[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박완서 선생 따라 인왕산 거닐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라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은 한창 공사 중이다. 영천시장 쪽으로 가려면 3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가야 한다. 반대쪽 출구가 막혀 있는 탓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독립문역 3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얼마 전 여기서 옛 친구 만나 인왕산 함께 오르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2번 출구였다. 그때 한참 박완서 선생 강의를 준비하던 때라 한 번은 꼭 여기 오르리라 생각하던 차였다.
노주석 님이라고, 길 위의 인문학 서울문학 기행을 오래 하시는 분이 계신다. 이 독립문 옆 지금은 무악동이지만 옛날 박완서 작가 사시던 현저동 46-418번지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나게 쓰셨던지, 몇 번이나 읽었다. 이에 따르면 여기서 현대 아파트, 아이파크 단지 쪽으로 올라가 어딘가에 옛날 선생의 현저동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박완서 선생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엄마의 말뚝’에 나온다. 1~3번 연작 중에서도 1번 작품이 한층 세세하고도 아기자기하다. 원래 선생은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 태생이다.
이곳은 해방 때만 해도 북위 38도선 이남이었지만 6·25전쟁 거치고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는 이북 땅이 되어 버렸다. 박완서 선생도 본의 아니게 황순원, 이호철, 최인훈 등의 월남작가 반열에 선 것이다.
남편을 어이없게 잃은 박완서 선생 어머니는 자식들만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게 하겠다고, 선생의 오빠부터 일찍 서울로 데려와 사대문 바깥 현저동에서 ‘산꼭대기’ 살림을 시작한다. 선생이 이어서 서울로 ‘불려간’ 때는 겨우 일곱 살 무렵, 여기서 선생은 가난한 집 아이들과 어울리다 지금 사직공원 옆에 있는 매동학교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때 학교를 인왕산 줄기를 타고 넘어가 다녔다는 것이다. 사대문 안 학교에를 들어가니 버젓이 전차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산을 타고 넘어갔다 넘어오는 등하굣길이었다는 것이다.
인왕산이라, 옛 친구와 나 둘이 옛날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는 그 가파른 등산로가 하나도 힘든 줄 모르겠다. 숨은 차오르는데, 그보다는 서로 속사정 모르고 살아온 사연들, 감춰 둔 정이 연연한 슬픔을 안기는 것 같아, 나쁘다기보다 좋다.
인왕산 339.8m ‘높은’ 봉에 오르니 저 옆으로 안산이며, 반대편으로 북악산이며, 또 저 옆으로 낙타산이라고도 하는 대학로 뒤편 낙산까지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봄날은 아직 꽃이 한창 필 때라 화창하고 모처럼 산에 올라온 청춘남녀들은 코로나를 잊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아하, 이리하여 저 옛날 ‘시어딤’ 김동인이 봄날 인왕산 자락 바위에 걸터앉아 ‘광화사’(야담, 1935.12)라고 광기 어린 화공의 이야기를 지어내자 했던 것이런가.
인왕산 내려오는 반대편은 수성동 계곡으로 향한다. 이곳 수성동은 겸재 정선의 화폭으로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무엇보다, 안평대군 모시던 궁녀 운영과 김 진사의 못다 이룬 사랑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운영전’을 생각하며, 또 이 근방에 살기도 했다는 윤동주 시인 옛 하숙집 옆 카페에 앉아 뜨거운 저녁 커피를 마시자니, 인생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라.
박완서도, 김동인도, 그 문학성이며 행적은 각기 달랐으되 벌써 고인이지 않느냐. 친구도 나도 벌써 하산을 생각하는 사람들 아니더냐. 금천교 시장 안 계단집을 찾을 즈음 이미 해는 떨어지고 없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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