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윤봉길 의사를 기억하는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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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중국 상하이에서 폭탄을 투척한 그날일 것이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는 일왕의 탄신을 기념하는 천장절과 상하이사변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현장에서 윤 의사는 미리 준비한 물통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등 일본 장성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키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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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이다. 현재 이곳에는 의사가 태어난 집 광현당(光顯堂)과 4세 이후부터 중국에 건너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 저한당(抯韓堂)이 있다. 광현당이 있는 생가는 두 물줄기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배 모양의 ‘도중도(島中島)’의 형태여서 더욱 운치가 있다. ‘저한당’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란 뜻으로, 의사의 삶이 그대로 관철된 모습이다. 조촐한 초가집 형태의 생가 유적지에는 농촌 계몽 운동에 투신하면서 야학 활동을 했던 공간들도 잘 남아있다. 1930년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 生不還)’는 글을 남기고 만주로 망명한 윤 의사는 1931년 임시정부로 옮겨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원이 되었다. 1932년의 거사 직전 자신이 갖고 있던 회중시계와 김구 선생의 낡은 시계를 맞바꾸었는데, 이 시계는 현재 윤봉길의사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생가 유적지 건너편에는 윤 의사를 모신 사당인 충의사(忠義祠)가 있다.
1960년 4·19혁명에서도 많은 젊은이가 희생되었고, 윤 의사의 거사가 일어난 날도 4월29일이었다. 4월의 맑은 하늘을 우리가 평화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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