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시민의 열광 속에서 자라는 파시즘 [책과 삶]
[경향신문]
파시스트 되는 법
미켈라 무르자 지음·한재호 옮김
사월의책 | 128쪽 | 1만3000원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책은 민주주의가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공존에 유해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쓴 것이다.” 책 서문을 보고 깜짝 놀라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라 무르자가 쓴 <파시스트 되는 법>은 제목처럼 저자가 파시스트에 거의 ‘빙의’돼 쓴, 파시즘 방법론에 대한 지침서다.
우리는 흔히 진보주의자는 민주주의에, 극우주의자는 파시즘에 사상적으로 가깝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런 착각에 일침을 가한다. 이른바 ‘민주 시민’들의 열광 아래 조용히 자라나는 것이 오늘날의 파시즘이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민주주의체제 한복판에서 출혈 없이도 세상을 지배하는 것, 그래서 지금의 파시즘은 ‘연성 파시즘’에 가깝다.
누구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한 인터넷은 파시스트에게 결코 장애물이 아니다. “최선의 파시스트 해결책은 그들이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모두가 말하기 때문에 모두 사소한 얘기가 될 수 있고, 진실과 거짓의 구별도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소셜미디어는 파시스트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수령’의 말을 왜곡하는 언론을 배제한 채 대중에게 직접 말할 수 있고, 그들과 소통하는 인상을 주며, 무엇보다 반복 생산이 가능하다.
물론 책은 사람들이 ‘우리 안의 파시즘’을 되돌아보고 분별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쓰인 반어적 풍자다. 진보라고 예외일까? 우두머리를 숭앙하고, 우리 편이 아닌 자는 모두 적으로 삼고, 우리 편을 위해서라면 차별하고 배제하고 조롱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언제나 곁에 있다.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배타주의와 포퓰리즘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상황에서 이 책이 쓰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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