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복수' 시점으로 그린 중독 탈출 [책과 삶]

백승찬 기자 2021. 4. 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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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리커버링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오숙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 684쪽 | 2만2000원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자신이 중독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술이든 도박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리커버링>은 놀랄 정도로 솔직하다. 술에 취해 벌인 그 모든 엉망진창 행동들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묘사한다. 먼 훗날 웃으며 회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자기파괴적 행동도 많다. 제이미슨은 “나는 내 몸을 돌보는 재주가 없었다”고 인정한다.

<리커버링>이 알코올에 중독됐다가 회복한 작가의 일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제이미슨은 이 책이 ‘1인칭 복수’여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 중독됐다가 회복한 혹은 회복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이미슨은 몇몇 작가들을 호출한다.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 등 남성 작가와 진 리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여성 작가다. 이들이 술에 취해 벌인 일화들을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잉크와 위스키 신화’의 이면을 들춘다. 중독된 여성·남성 작가에 대한 각기 다른 시선을 두고는 젠더 문제도 엮인다.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 것처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자기파괴가 중독의 핵심이다. 책은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실패하고, 다시 재활을 시도하는 과정도 그린다. 제목이 말하듯 그 지루한 과정이야말로 중요하다. 회복에 큰 도움을 받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AA)을 통해서는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들을 모른 척할 필요는 없었다. 공명은 융합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 똑같은 삶을 살았던 척하는 게 아니었다. 공명이 뜻하는 건 경청이었다”고 말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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