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질병의 위협' 경고했던 저자 "단언컨대, 미국 주도 세상은 끝난다" [화제의 책]

문학수 선임기자 2021. 4. 2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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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권기대 옮김
민음사 | 388쪽 | 1만8500원

2017년 6월, 치명적인 질병이 세계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사람이 있었다. CNN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제 정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파리드 자카리아(57)였다. 이 경고는 그가 호스트를 맡고 있는 <파리드 자카리아 GPS>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대통령 트럼프가 질병관리 예산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시기였다. 자카리아가 던진 코멘트를 간추리면 이렇다.

“지금 미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전혀 커다란 것이 아니다. 아주 작아서 현미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이다. 치명적 병원균은 전 지구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고 미국은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다. (오늘날의 세계는) 스페인독감이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보다 훨씬 취약하다. 인간들이 꽉꽉 들어찬 도시들, 전쟁, 자연재해, 나라와 나라 사이 항공여행은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도 스물네 시간 안에 세계 어디에나 퍼질 수 있는 상황임을 뜻한다. 글로벌 팬데믹은 모든 국경선을 가차 없이 자르고 지나간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지구촌의 협력이 더 끈끈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탄식하겠지만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다.”

자카리아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와 ‘뉴스위크’ 편집장을 지냈다. ‘워싱턴 포스트’에도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파리드 자카리아 GPS>는 전 세계에 2억명 넘는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CNN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로는 <자유의 미래>(2004), <흔들리는 세계의 축>(2008),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2015) 등이 있다.

이번 책은 “치명적인 코비드(Covid·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팬데믹” 이후,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말한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코비드(코로나)19가 지나가도 미래에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새 시대를 살아야 한다.” 책 앞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번 팬데믹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변곡점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사태가 각국에 남길 유산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예견한다. 글로벌 경제의 디지털화, 미국의 쇠퇴, 계속되는 불평등이 팬데믹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공동체와 제도가 커다란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핵심은 ‘그런 세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저자의 예측과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20세기에 정부의 크기가 중요했다면 지금부터는 정부의 질이다.” “앞으로는 지난 40년간 세계를 지배한 자유시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느 정도는 그 반대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삶은 디지털로 영위되겠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디지털화될 수 없는 가치를 갈망할 것이다.” “불평등은 더 악화된다. 거대 IT기업들은 더 거대해지고 고학력자들은 자본과 네트워크로 더욱 성공할 것이며,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출세할 것이다.” “경제는 디지털화될수록 더욱 글로벌해질 것이다.”

국제정치 전문가로서의 식견이 두드러지는 지점은 책의 후반부다. 저자는 트럼프가 주도했던 “미국 이기주의”를 비판한다. 물론 바이든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시점이 지난해라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 경쟁에서 다른 나라를 밀쳐내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제 세계에는) 길들일 수 없는 여러 힘들이 터져나오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 패권의 리부팅을 수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트럼프만이 아니라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인도의 모디 등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팬데믹이 초래한 국수주의”를 우려한다.

결국 책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글로벌리즘이며, 그것은 “제대로 움직이는 다자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물론 ‘말처럼 쉽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저자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위기”는 물론이거니와, “국경을 모르는 경기장과도 같은 사이버 세상”에서 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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