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추행 피해자에게 방명록 사과한 윤호중, 이게 혁신인가

2021. 4. 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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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원내대표단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방문, 현충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부산 시장의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윤 위원장은 현충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한 뒤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취임 후 처음으로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이기는 하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참배 현장에서 방명록을 통해 사과한 것은 장소·형식 모두 부적절했다. 피해자님이라 높여 부르기만 하고 구체적 내용 없이 사과드린다는 말에 그친 점도 유감스럽다.

윤 위원장의 사과는 진정성을 담지 못했다. 당장 오거돈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 현충원에서 사과를 한 것은 너무나 모욕적”이라는 입장을 냈다.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도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담기지 않은 사과는 가식적인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말뿐인 사과만 반복하는 민주당의 행태에 재차 유감을 표한 것이다. 윤 위원장의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가 되었다.

윤 위원장의 이 같은 엉뚱한 사과는 우연이 아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사과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아왔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 2차 가해를 야기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지도부가 상황에 떠밀려 사과를 할 때조차 진정성을 보이지 못했다. 잘못한 점에 대한 인정과 사과 후 후속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4·7 재·보궐 선거 전에도 표를 달라는 읍소 차원의 사과와 조치가 있었을 뿐, 당 차원의 철저한 반성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 후 새로 뽑은 지도부가 이러니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할 수 없다.

민주당 초선모임은 최근 발표한 자체 쇄신안에서 “당 지도부에 국민과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선거 참패 직후 진심 없는 사과, 주어·목적어 없는 사과, 행동 없는 사과로 일관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주류의 인식은 이들과 달라보인다. 민주당은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 민주당은 두 전직 시장의 성범죄뿐 아니라 그동안 저지른 2차 가해에 대해서도 명확히 사과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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