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디지털 집현전
[경향신문]
“일찍이 집현전을 설치하려는 의논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다시 아뢰지 않는가!”(<세종실록> 6권) 조선 세종은 지시했던 집현전의 설치가 지지부진하자 신하들을 꾸짖었다.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419년 12월12일의 일이다. 세종의 다그침 때문일까. 3개월 뒤 <세종실록>은 “집현전 관사를 궁중에 두고, 문관 가운데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고, 젊은 사람을 뽑아 임금의 자문에 대비했다”(1420년 3월)며 집현전 출범과 본격적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집현전은 원래 고려 때부터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다. 그것을 ‘현명한 자들을 모아놓은 곳’이란 이름에 걸맞게 세종이 혁신한 것이다. 집현전 학사들은 전문가적 식견으로 왕과 왕세자가 보다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도록 조언했다. 훈민정음 창제를 돕고, <동국정운>과 <고려사> <농사직설> <삼강행실도> 등 다방면의 책들을 펴냈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세조에 의해 폐지(1456년)될 때까지 집현전은 조선시대 학문 발전의 토대, 문화 부흥의 산실이었다.
현대판 집현전이라 할 ‘디지털 집현전’ 구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디지털 집현전 법안이라 할 수 있는 ‘국가지식정보 연계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 구축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디지털 집현전은 각 분야 논문·콘텐츠 등 국가지식정보의 통합 플랫폼을 말한다. 25개 국가기관이 보유한 4억4000만여건의 국가지식정보가 48개 개별 사이트를 통해 흩어져 제공되는데 이를 한곳에 통합하는 것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의 논문 6500만여건, 17개 시·도 통합 초등·중학교 온라인 학습서비스(e학습터)의 콘텐츠 5만5000종, 국회도서관 등의 자료가 대표적이다. 4차산업의 시대를 맞아 온라인 지식정보·교육콘텐츠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보다 편하고 쉽게 국가지식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지식역량 제고는 물론 국가 경쟁력 확보에도 필수적이다.
600여년 만에 온라인으로 부활하는 디지털 집현전이 보다 철저한 준비로 그 이름에 걸맞게 21세기의 집현전이 되기를 기대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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