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외교' 신뢰에 흠집 내는 정의용의 '입'

조영빈 2021. 4. 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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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수급' 초비상이 걸린 정부가 대안으로 '백신 외교'를 띄웠지만, 국민 기대감만 부풀렸다는 비판론이 거세다.

양국 정상이 만나기도 전에 외교장관이 백신 외교를 주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백신 외교 관련 언론의 질문에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백신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구체적 백신 도입 문제는 방역 당국에 문의하라"고 답변했다.

정 장관 발언 속 정부의 백신 외교 전략도 촘촘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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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신 후 마스크를 다시 쓰고 있다. 홍인기 기자

'백신 수급' 초비상이 걸린 정부가 대안으로 '백신 외교'를 띄웠지만, 국민 기대감만 부풀렸다는 비판론이 거세다. 여물지 않은 대책으로 정부가 혼선만 키우고 있어서다. 그 혼선의 원점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입'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백신 스와프 오락가락...靑 부담 가중

정 장관은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미 '백신 스와프'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공개했다. 국가 간 협의가 무르익을 때까진 공개하지 않는 게 외교 관례인 만큼, '양국 논의가 합의 수준에 가까워진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백신 협력 등 한미의 긴밀한 현안 공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고 밝힌 터였다.

하지만 정 장관은 21일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미국이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한 국내 백신 비축분에 여유가 없다는 입장을 설명했다"면서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는 "스와프 개념보다는 서로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방안 차원"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미국산 백신이 곧 오겠다'는 기대를 키운 것도, 하루 만에 꺼뜨린 것도 정 장관인 셈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부 장관이 한미 백신 논의 상황을 공개한 것 역시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양국 정상이 만나기도 전에 외교장관이 백신 외교를 주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22일 "주요국 정상들이 왜 직접 백신 외교를 뛰겠느냐"면서 "가장 큰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청와대가 직접 백신 외교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백신 외교 관련 언론의 질문에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백신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구체적 백신 도입 문제는 방역 당국에 문의하라"고 답변했다. 정 장관의 백신 스와프 언급으로 외교부가 백신 외교 이슈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놓고 좀처럼 수습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한미 동맹 놓고 이중적 해석

정 장관 발언 속 정부의 백신 외교 전략도 촘촘하지 못하다. 정 장관은 20일 국회에서 '한국이 미국에 줄 수 있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에서는 백신 문제는 정치·외교적 사안과는 디커플링(탈동조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사이에서 백신과 미중 갈등·북핵 등 이른바 동맹 이슈가 분리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21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정 장관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점을 미 측에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 정부가 미국에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우선 지원했던 것을 언급하며 "우리도 수급이 녹록지 않았는데 한미동맹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감안했다"고도 했다. '백신과 동맹 이슈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동맹을 앞세워 미국을 설득하고 있다'고 다른 얘기를 한 것이다.

백신이 최고급 전략물자로 부상한 상황에서 경성 이슈(안보)와 연성 이슈(방역)를 구분하는 것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미국은 "인도와 백신 생산 역량 증강을 포함해 쿼드(Quad) 차원에서 조율해왔다"(22일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며 백신을 안보 협력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거듭 선언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갈등 같은 안보 이슈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데 갑자기 백신 수급이 급해지니 이중적인 입장을 표출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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