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경제교사가 인정한 '경제 천재' 테일러 스위프트.. 음악의 경제학 '로코노믹스'

심윤지 기자 2021. 4. 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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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로코노믹스>는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가 음악 산업의 변화를 각종 경제학 이론을 동원해 설명한 대중서다. 위 사진은 독보적인 스트리밍 전략을 개발해 크루거로부터 ‘경제 천재’라는 별명을 얻은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게티이미지코리아·Mark Metcalfe



로코노믹스

앨런 크루거 지음·안세민 옮김 | 비씽크 | 380쪽 | 1만8000원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뉴질랜드 프로듀서 조시685와 미국 가수 제이슨 데룰로가 작업한 곡이다. 지난해 6월 발매 후 넉 달 간,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7~1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이 보컬과 랩에 참여한 리믹스 버전을 발매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단숨에 같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1990년대부터 음원시장에서 ‘피처링’ 곡이 급증한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여기엔 경제적 이유가 있다. 현재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음악시장의 대세는 밴드보다는 솔로. 밴드 구성원 수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기술의 발전은 소수 인원만으로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했고,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자 가수들 간의 피처링이 활발해졌다. 특히 피처링 곡들 대부분은 유명 가수가 처음 30초 미만 등장한다. 최소 30초 이상 스트리밍한 곡에서만 저작권을 지불한다는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정책 때문이다. <로코노믹스>는 음악 산업의 변화를 각종 경제 이론을 동원해 설명한 대중 경제학 책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선생님’이자 백악관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의 유작이기도 하다. ‘위대한 개츠비 곡선’ 개념을 도입해 전 세계에 불평등과 세습 논쟁을 촉발하기도 한 그는 ‘음악 산업에서 누가 어떻게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의 마지막 연구 주제로 선택했다.

음악 산업은 전 세계 콘텐츠 산업 중에서도 기술 혁신으로 인한 변화가 가장 빨리, 가장 크게 일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카세트테이프에서 앨범으로,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끊임없이 달라졌다. 경제학자들 입장에서 이러한 ‘창조적 파괴’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 저자는 이를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해 자기 눈앞에서 진화하는 종을 관찰하는 것”에 비유한다.

크루거는 이러한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인물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꼽는다. 스위프트는 6집 <레퓨테이션>을 발매하고 처음 일주일 동안은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올리지 않았다. 가장 헌신적인 팬들을 위해 CD 또는 음원 다운로드로만 구입할 수 있게 한 것. 이로 인해 그는 발매 첫주에만 약 120만장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가격 차별은 소비자들에게 “기업이 돈만 밝힌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뮤지션 사이의 불공정한 수익 배분을 지적함으로써 이를 ‘예술의 정당한 가치를 요구하는 행위’로 만들었다. 그가 스위프트를 ‘경제 천재’로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천착해온 학자의 눈에, 음악 산업은 ‘슈퍼스타’가 지배하는 대표적 시장이다. 대다수 뮤지션들은 최저생계비도 간신히 벌지만, 극소수의 슈퍼스타들은 갈수록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는다. 로이터연합뉴스

경제적 불평등에 천착해온 학자의 눈에, 음악 산업은 ‘슈퍼스타’가 지배하는 대표적 시장이다. 대다수 뮤지션들은 최저생계비도 간신히 벌지만, 극소수의 슈퍼스타들은 갈수록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는다. 그는 ‘슈퍼스타 경제’가 성립하는 산업에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본다. 한번 앨범이 발매되면 관객 1인당 추가되는 비용이 거의 없이 재능을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해야 한다. 여기에 1등은 2등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1위가 2위보다 몇 배의 수익을 내고, 2위가 3위보다 또 몇 배의 수익을 내는 시장. 저자는 이러한 음악 산업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멱법칙’이라는 경제학적 개념을 끌어온다. 멱법칙은 뱅크런, 금융위기, 주택 버블처럼 거시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으로, 선형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크루거에 따르면 아티스트들의 스트리밍 수, 앨범 판매량, 콘서트 수입, 뮤지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까지도 이러한 멱법칙 분포를 따른다. 주변에서 이미 인기 있는 곡을 좋다고 느끼는 인지적인 편향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무명의 신인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디오 같은 기성 매체가 아닌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이름을 알린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나? 비슷한 의문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품었다. 크루그먼은 2013년 ‘지금도 여전히 슈퍼스타의 시대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앨런 크루거조차 시대를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라며 도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음악 산업은 (뮤지션의 수입에 관한 한) 점점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종전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뮤지션 수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투어 공연 수입 중 상위 1%에 돌아가는 몫이 1982년 26%에서 2017년 60%로 증가했다는 ‘폴스타 데이터’를 근거로 든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유명 가수와 무명 가수, 스포티파이와 아마존 임원부터 동네 음반 가게 주인까지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된 2019년은 미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한 초창기였기 때문에 일부 설명에선 다소 시차가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 가수들의 음반과 매니지먼트 계약, 콘서트 수익 모델, 저작권 배분 구조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 최근 BTS 소속사 하이브가 세계 최대의 음반회사인 유니버셜뮤직그룹과 협업하고,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매니저인 스쿠터 브라운 회사를 인수했다는 기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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