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 감사원 "SH, 유치권 문제 알고도 120억 원 썼다"

박병현 기자 2021. 4.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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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감사원 "SH, 유치권 문제 알고도 120억 원 썼다".txt
감사원이 22일 서울주택도시공사, SH에 대한 정기 감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한 달간, 감사를 진행한 뒤 약 10개월여 만에 나온 결과입니다. 그동안 JTBC는 SH가 유치권이 걸린 다세대 주택을 120억 원에 산 뒤 2년간 방치했다는 사실을 전해드렸습니다.
〈사진=JTBC 뉴스룸 캡처〉
(관련 기사: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1272)
〈사진=JTBC 뉴스룸 캡처〉
(관련 기사: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7627)
감사원 보고서엔 '120억 원 의혹'뿐만 아니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SH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감사원 결론부터 말하면, 'SH는 유치권이 걸린 사실을 알고도 120억 원에 달하는 서울 시민의 세금을 헛되게 썼습니다.

◇SH에 도착한 우편물 한 통…"유치권 걸렸으니 계약 유의해라"

2018년 11월, SH 본사에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SH가 다세대주택을 사기로 한 지 한 달 전입니다. 우편물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유치권 행사 및 법률 행위 다툼으로 인한 계약 유의 건〉. 발신자는 유치권 협의회 측이었습니다. 제목대로 '공사 업체가 공사비를 안 줘서 유치권을 걸었으니 SH가 이 주택을 살 때 조심하라'는 내용의 우편물이었습니다. SH 우편물 담당자는 매입주택부서에 이를 전달했습니다. 협의회 측은 SH에 전화까지 걸어 우편물을 보냈다고 말도 해줬습니다.

◇사라진 우편물…SH "기억 안 나"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합니다. 감사원은 SH에 이 우편물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SH 규정상, 문서를
받으면 등록번호를 새기고 보관해야 합니다. 특히 주요 계약에 관한 사안이라면 전자 시스템에 등록하고 '영구 보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서는 없었습니다. 왜 없어진 걸까요? 감사원이 보고서에 적은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업무 담당자 등이 합리적 근거 없이 분실하였다거나 수령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SH는 2018년 12월, 서울 가산동과 남가좌동, 46세대 다세대 주택을 120억 원에 삽니다.

◇SH 본사에서 회의까지 했는데… "몰랐다"는 SH

감사원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 SH는 JTBC에 이렇게 주장해왔습니다. '계약을 맺고 1년이 지난, 2019년 12월쯤 유치권 문제를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공개된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SH의 주장이 사실인지 의문만 커집니다. 감사보고서엔 2019년 2월, 유치권 협의회 측 법률대리인이 SH 본사를 방문했던 것으로 나옵니다. 이후 'SH 9층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유치권 관련한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게 감사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때만 해도 SH가 '120억 원 계약'을 맺고 두 달이 지난 때입니다. 이때만이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면 2년 넘게 빈집으로 방치하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부서 이동을 했습니다.

"유치권 해결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후임 부서장에게도 유치권 관련 내용을 인수인계 하지 않는 등…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 감사원 "유치권 문제 알고도 대책 마련한 게 없었다"

이를 '일부' 직원들의 '부주의' 또는 '일탈'로 봐야 할까요? SH의 주장대로, 정말 2019년 12월이 돼서야 SH는 심각성을 알았던 걸까요? SH의 입장을 믿는다 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은 또 있습니다. 후임자들 또한 유치권 문제를 방관했습니다.

"2019년 7월, (후임자 000은) 유치권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2020년 6월, 감사일 현재까지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후임 직원, 부서장 모두 손을 놓고 '방치'한 겁니다. 감사원은 SH가 정상적으로 임대 주택을 공급했다면 2019년 3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임대료 등을 포함해 모두 11억여 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습니다.

◇ 자료 삭제하고 진술 바꾸고…감사 방해한 SH

감사원은 감사 결과 보고서에 SH 직원들이 고의로 감사를 방해한 내용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유치권 내용 증명 우편물을 받았단 사실을 문서에서 지우고 진술까지 번복한 겁니다. SH가 떳떳했다면 취하지 않았을 행동입니다.

감사원은 SH에 〈인사규정〉에 따라 정직·경징계 등을 요구했습니다. 올해 초, 이 문제를 검찰로 넘겨 수사도 진행 중입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SH는 뒤늦게 유치권이 걸린 주택을 사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계약 전, 공사 대금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하게 감독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시스템이 없어' 생긴 문제인지 SH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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