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미국은 가까이, 중국은 더 가까이..
동맹 줄 세워 전방위 中압박 '불안감'
'안미경중' 폐기 후폭풍 감당은 누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바이든발(發) 민주ㆍ인권 외교가 사해(四海)를 흠뻑 적시는데, 외려 전 세계가 불안감에 밤잠을 설친다. 지금 당장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날이다.
미ㆍ중 패권전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동맹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최대 위협국으로 규정하며 전방위로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근 행보는 불문율로 통하던 ‘하나의 중국’ 원칙마저 헌신짝 취급할 수 있다는 데까지 수위를 높였다. 지난 16일 바이든-스가 미ㆍ일 정상 공동성명에서 반세기 만에 대만 문제를 명기하며 베이징 정부를 기함케 했다. 그에 앞서 미 해군은 동중국해를 항해 중인 자국 구축함 지휘관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상태로 난간 위에 올린 채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느긋이 바라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일련의 흐름은 ‘너희는 아직 우리 상대가 안 된다’는 메시지다. 대세를 확인한 듯 일본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압박 전선에 올인했다. 그러나 “루비콘강을 건넜다” “경제 보복을 감당할 수 있느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본 내부에서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도발 움직임도 심상찮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 한 달여 만에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러시아는 이번에는 경제 핵심도시 돈바스까지 점령할 기세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해도 힘 빠진 나토와 대중 전선에 골몰하는 미국이 유의미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과 나토는 내달부터 아프간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미군이 물러간 힘의 공백을 틈타 탈레반과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잔존 세력이 득세할 게 뻔하다. 화약고에서 심지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실제 미 관영, 미국의소리 방송은 본토 테러 발생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2018년 남북정상이 함께 만든 ‘한반도의 봄’에 찬물을 끼얹고 대결모드로 얼굴을 싹 바꾼 북한 역시 순항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 발사로 존재감을 보였다. 조만간 공개될 미국의 대북정책이 성에 차지 않으면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지 않을까. 그리 놀랍지도 않다. 안팎에서 대한민국호를 집어삼킬 듯한 외교·안보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일부에선 이참에 중국과 결별하고 미국 편에 서는 것이 궁극의 해법인 양 목청을 높인다.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을 폐기처분하라는 말이다. 용기 있고, 쾌도난마적인 발언이지만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비난도 함께 뒤집어써야 한다.
이쯤에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끼인 조선의 외교정책을 떠올려본다. 재조지은을 갚으라는 명의 우격다짐에 광해는 도원수 강홍립을 파병하면서 ‘전세가 여의치 않을 땐 전략적 항복을 택하라’고 밀명을 내렸다. 이를 통해 후금은 광해의 속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더 큰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폐주 광해가 그나마 중립외교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러나 인조반정후 명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대와 충성의 대가는 정묘ㆍ병자호란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실력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결사 항전을 외친 결과다.
결국 해법은 자강이다. 동맹을 버려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10대 강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당당히 제목소리를 내도 될 때가 됐다. 아니 이미 많이 늦었다. 한쪽을 버리고, 다른 쪽을 취하는 것은 하수의 길이다. 영화 대부 시리즈 2에서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게 외교다.
최형철 에디터겸 논설위원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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