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에 대한 여성혐오자들의 악플 테러는 어떤 사회적 용인 위에서 벌어졌는가 [위근우의 리플레이]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1. 4. 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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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준비된 여성혐오자들에 '출발 신호' 준 기회주의 정치인들

[경향신문]

네이버 웹툰 <성경의 역사> <바른 연애 길잡이> <이두나>엔 악플이 잇따랐다. ‘남혐 웹툰’으로 낙인찍고, ‘메갈’이라 공격하는 내용이 많다. 악플은 재·보궐 선거 이후 ‘이대남’과 ‘페미니즘’ 논란 이후 재등장했다. 악플을 다는 이들은 <복학왕>도 여성혐오 논란으로 사과했으니 ‘남혐’ 작품도 사과해야 한다는 논리만 반복한다. <복학왕>이 차별 맥락을 삭제하고, 섹스어필로 여성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처럼 표현한 게 문제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 델리스파이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중.

감성적 가사로 유명한 저 구절은 연애의 설레는 순간 외에도 어떤 보편적 진실을 알려준다. 아무 준비도 없다가 갑자기 액셀을 밟고 가속하는 이가 있다면, 이미 항상 엔진을 켜두고 있었다는 것. 엉뚱하지만, 지난주부터 네이버 웹툰 <성경의 역사> <바른 연애 길잡이> <이두나!> 등을 ‘남혐 웹툰’으로 낙인찍고 악플 및 별점 테러를 벌이는 일부(라기에는 상당히 많긴 하다) 남성들의 행동을 보며 다시금 저 가사가 떠올랐다. ‘남혐’은커녕 전형적인 이성애 청춘 연애물인 <바른 연애 길잡이>에서 남성 캐릭터가 “조금만”이라는 대사와 함께 취한 손가락 제스처를 메갈리아의 상징 포즈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이들에게서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나 당위를 찾기란 난망하다. 그들이 진심으로 믿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를 비롯한 일부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이번 공격은 그럼에도 매우 빠르고 자신만만하게 진행됐다. 이것은 담론의 누적과 폭발보단, 미리 준비된 이들의 급발진에 가까워 보인다. 언제든 여성에 대한 공격을 할 준비가 된 이들이 드릉드릉 시동을 건 상태에서, 누군가 기다리던 출발 신호를 주자 액셀을 밟고 마음껏 질주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 신호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들이 질주할 수 있는 도로는 무엇으로 포장되었는가.

2016년에도 페미니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인증한 여성 성우의 작업물이 남성 유저들의 문제제기로 삭제되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역시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별점 테러가 진행된 바 있다. 티셔츠를 판 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는 메갈리아 사이트와 동일한 커뮤니티라거나, 작가가 독자를 개돼지라고 했더라는 가짜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되었고, 이를 근거로 몇몇 유저들은 특정 작가들에 대한 검열이 필요하다며 ‘예스컷 운동’을 벌였다. 지금도 그때도 여성혐오가 깔려 있었고 당위는 부족했다. 다만 2016년엔 적어도 최소한의 인과적인 사건의 흐름과 메갈리아라는 명백한 분노의 대상이 있었다. 반면 이번 악플 및 별점 테러는 매우 많은 유저가 적극적이고 일사불란하게 뛰어드는 것과 별개로 사건의 인과를 찾기 어렵다. 공격 대상의 선별도 무차별적이다. 앞서 말했듯 급발진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툭 튀어나온 사건이다. 2016년엔 비록 부당할지언정 각 사건의 인과관계를 메갈리아의 횡포로 해석해 나름의 당위를 확보하려 했다면, 이번엔 그런 것조차 없다. ‘피X개’ 따위의 말로 당당하게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과거 기안84의 <복학왕>도 여성혐오 논란으로 사과했으니 이들 ‘남혐’ 작품도 사과해야 한다는 논리만 반복할 뿐이다. 일부 남성들의 극단적인 여성혐오 자체는 문제적이되 놀랍진 않다. 하지만 이 자신감과 기세등등함은 좀 놀랍다. 마치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네이버 웹툰 <성경의 역사>, <바른 연애 길잡이>, <이두나>(위부터).

지난 7일 여당의 재·보궐 선거 패배와 20대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를 두고 여성 우대적인 정부 정책 때문이라 해석하고 20대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에 귀 기울이자는 목소리가 여야 가리지 않고 나온 것과 이번 사태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여당 재선 의원들의 선거 리뷰 모임에선 “우리가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잃은 건 페미니즘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으며, 같은 당 정한도 용인시의원은 “여성 우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남성도 약자이고 피해자”라고 했다. 역시 여당 소속 김남국 의원의 경우 노골적으로 역차별 담론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역시 20대 남성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간베스트 저장소’ 못지않은 여성혐오 정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를 향해 대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당장 20대 남성들이 여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가 실체조차 불분명한 여성 우대 정책 때문인지 알 수 없다. 19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대한 연구인 <세습 중산층 사회>는 ‘20대 남성 보수화라는 신화’라는 장에서 “현재 20대 여성이 과거 세대보다 진보 쪽으로 대폭 이동한 것이라면, 20대 남성의 보수화는 흔히 논의되는 것보다 소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진단한다. 20대 남성의 야당 지지가 정말 여성 우대 정책에 대한 반동이라 가정해도, 이를 젠더 갈등이란 말로 묶어 하나의 정치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의심스럽다. 같은 책에서 저자는 “20대 남성이 주도하는 젠더 갈등이 결국 20대 남성 각각이 속한 계층에 따라 다른 동기에 의해서 발생하며 (중략) 그 때문에 여성혐오를 중심으로 한 20대 남성 대상의 포퓰리즘은 (중략) 그저 가능성에 그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남는 것은 정치적 기획도 사회적 개선도 뭣도 아닌, 20대 남성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는 무책임한 구애뿐이다. 20대 남성 표심을 잡겠다며 현역인 여당 전용기 의원이 이미 위헌으로 판결난 군가산점제도를 공론화할 때, 그동안 누적된 성평등 논의에서의 절차적 합리성과 논변에 대한 가상적 합의는 깨지고, 일부 남성들은 그동안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한 것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을 만끽한다. 이것을 액셀을 밟아도 된다는 신호로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항상 엔진은 켜져 있었고 마침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하지만 도로에 장해물이 많다면 질주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 플랫폼은 혐오주의자들이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차별 금지라는 장해물을 제거한 말끔한 포장도로다. 이번 사태에서 네이버 측 역시 테러의 피해자일 수 있지만, 그동안의 댓글 정책에서 이번 사태가 발아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베스트 댓글 시스템의 경우 비록 스팸 댓글 도배를 막기 위한 정책이었다고는 하지만, 특정 세력의 목소리를 과잉 대표화하기 매우 좋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허점을 파고들어 많은 이들이 웹툰 베스트 댓글란을 차별 및 혐오 표현을 전시하는 장으로 사용해왔다. 웹툰 내용과는 상관없다. 액션 만화인 <신도림> 중 3년 전 멧돼지 떼가 나온 장면에선 ‘뭐야 메갈들이잖아?’라는 말이 베스트 댓글이 되었고, 두 달 전엔 등장인물인 림춘이 부하들에게 자기 딸을 부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대해선 역시 밑도 끝도 없이 ‘저게 아버지다 메갈년들아’가 베스트 댓글이 됐다. 물론 플랫폼이 손을 놓는 건 아니다. 무협 만화인 <낙향문사전> 최근 화에선 주인공이 내공으로 여성 캐릭터를 치료하는 장면에 대해 “나중에 저 여자가 깨서 ‘전후사정은 기억 안 나지만 저 사람이 내 가슴 만졌어요’라고 말하면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시되는 우리나라의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초법적 논리에 의해 구속되지 않음?’이라는 댓글이 2000개가 넘는 추천으로 베스트 댓글이 되었지만 삭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인지 감수성은 헌법보다 위에 있는 상위법입니다’ 따위의 비아냥거림이나 에둘러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말이 베스트 댓글란을 점한다. 이런 환경과 애매한 판단 기준에서 작가와 작품을 향한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을 막기란 어렵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결국 이번 웹툰 테러 사태는 그동안 누적된 성평등에 대한 논의, 차별 표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못하거나 가까스로 이룬 합의를 파기하며 벌어진 문제에 가깝다. 해당 댓글들을 보면 마치 대단히 논리적인 척, <바른 연애 길잡이>에 나온 ‘허버허버’란 표현(사실 작품에선 ‘허버’까지만 나온다)이 남성 혐오적이며 ‘오또케 오또케’가 여성혐오라 문제면 ‘허버허버’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헛소리다. 과거 주취자 난동에 대한 여경 논란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또케 오또케’는 여성이 위기 상황 및 갈등 상황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편견을 재생산한다. 즉 사회생활에서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표현이다. 반면 ‘허버허버’는 그것이 남성만을 겨냥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 해서 남성들이 실제 식사 자리에서 차별을 받는 건 아니다. <복학왕>은 독자 항의에 사과했는데 왜 <바른 연애 길잡이>나 <성경의 역사>는 사과하지 않느냐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복학왕>은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차별의 맥락을 삭제한 뒤 여성이 마치 섹스어필로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처럼 표현했다. 그것이 차별적 행위다. <복학왕> 사태에선 사과했지만 이번에 그러지 않는 건, 악플러들 주장대로 네이버가 ‘페미버’라서가 아니라 반대로 <복학왕>에서 해당 에피소드의 여성 차별 요소를 미처 읽어내지 못해서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상대에 대한 미움의 감정 문제가 아닌 공적 차별의 문제라는 걸 오조 오억 번 이야기했지만 그걸 남성들도 외면하고 정치권과 플랫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나는 중이다. 얼마 전 카카오에선 남성들의 항의에 ‘허버허버’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삭제했다. 이를 본인들의 주장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 받아들인 이들이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액셀을 밟고 기세등등하게 나서는 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여성혐오의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던 일부 남성들과 동석하고 출발을 부추긴 기회주의자들에게 맨 처음 인용한 가수의 다른 가사를 들려준다.

시간이 다됐어 도태될 낙오자들 - 델리스파이스 ‘워터멜론’ 중.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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