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심판한 민심에 다시 오만으로 답하는 여당 [유창선의 시시비비]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1. 4.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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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민주당의 민심-당심 엇박자
5년 전 새누리당 친박은 오늘 민주당 친문의 거울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4·7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나자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보선은 정부·여당의 무덤이라곤 하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격차로 패배한 사실은 곧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불과 1년 전의 21대 총선 때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 여당 후보들도 문 대통령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대통령의 이름은 더 이상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총선 압승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이 전망은 어두워지고 있다.

충격에 빠진 청와대는 결국 선거 민심을 수용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개편이 있었지만, 하이라이트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철희 정무수석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에서 비주류로 불렸던 정치인으로, 합리적 사고와 균형감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워낙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큰 민주당인지라 이들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소신 발언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들 정도면 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집권 이래 문 대통령 주변에는 언제나 같은 생각을 가진 참모들만 있어 청와대가 집단사고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감안한다면, 김부겸과 이철희의 중용은 진일보한 인사라고 평가할 만하다. 물론 여권의 울타리를 넘어선 거국적인 인사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민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마침 터져나온 전효관 청와대 문화비서관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민주당 출신 김우남 마사회장의 폭언 논란에 대해 문 대통령이 즉각적인 감찰을 지시한 것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한 발 빠른 대응이었다. 적어도 청와대는 민심을 받아들이며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였던 셈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4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철희 청와대 신임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1일 천하로 끝나고 만 초선 5인의 반란

하지만 문 대통령 인사의 빛을 바래게 만든 것은 여당인 민주당의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태도였다. 청와대의 몸 낮추기와는 달리, 정작 참패의 당사자였던 민주당은 이제까지 가던 길을 그대로 가겠다는 신호를 연일 발신하고 있다. 여당을 심판한 선거 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강성 '친문' 정치인들이 당을 이끌며 '변함없는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당을 둘러싸고 있다. 선거 패배 직후 오영환·이소영·전용기·장경태·장철민 등 민주당 2030 초선의원 5인은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분열하며 오히려 검찰 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민주당 내의 성역이 된 '조국'이라는 이름을 거론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들의 사과는 주목을 받았지만, 초선 5인의 반란은 1일 천하로 끝나고 만다. 이들 의원은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과 악성 댓글들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이내 깃발을 내리고 만다. 심지어 장경태 의원은 기자회견문이 마르기도 전에 "조국 장관께서 고초를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다시 사과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단 하루 만에 진압당해 찻잔 속 태풍이 되고 만 초선의원들의 행동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민주당의 구조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초선들이 용기를 내 어렵게 타오른 당 쇄신의 불길이 불과 며칠 만에 급속도로 식고 있다"(김해영 전 최고위원), "당이 점점 재보선 패배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조응천 의원)는 우려에도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은 여당 의원들의 입을 막는 무기로서 위력을 발휘했다. 문자폭탄에 대해 "당 지도자 반열에 있는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단호하게 자제를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김 전 최고위원이 촉구했지만, 지도자 반열에 있는 누구도 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입법 독주의 주역' 지목된 인사, 원내대표에

초선의원들의 오락가락 행동이 그렇게 막을 내린 뒤, 며칠 동안 의례적이나마 반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나오던 민주당에는 '변함없는 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 강성 친문인  윤호중 의원이 비주류 박완주 의원을 큰 표 차로 이기고 원내대표에 선출된 장면은 친문 일색으로 공고화된 민주당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윤 원내대표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야당을 배제하고 임대차 3법, 공수처법 강행 처리에 앞장서 입법 독주의 주역으로 지목되었던 인물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집권세력의 오만에 성난 선거 민심을 존중했다면, 민심을 거부하는 듯한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윤 원내대표는 "검찰·언론 개혁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꺼내 이제까지 가던 길을 변함없이 가겠다는 불퇴전의 의지를 드러냈다. 게다가 4월22일 현재 공석 중인 법사위원장 자리에는 강성 중 강성인 정청래 의원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떠오를 지경이다. 

당 대표 경선도 다르지 않다. 홍영표 의원은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던 친문 핵심 인사이고, 송영길 의원은 4·7 선거에서 "김어준이 없는 아침이 두렵다면 오직 박영선"이라고 한 '김어준 사수파'다. 우원식 의원도 범친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다. 친문 정치세력을 심판한 선거 민심의 인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당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 지도부를 다시 쥐고 갈 태세다. 오만했던 여당에 대한 심판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다시 오만으로 답하고 있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번 당내 선거에 나서지 않기 바란다"는 조응천 의원의 목소리는 그저 외로운 절규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4·7 선거 후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모습들은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빼닮았다. 당시 20대 총선에서 친박-비박의 공천 갈등으로 참패했던 새누리당은 친박세력의 오만을 심판한 선거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정현을 당 대표로 선출했고, 얼마 후에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2021년의 민주당 또한 자신들을 심판한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오만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5년 전 새누리당 친박은 오늘 민주당 친문의 거울인 셈이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빠뜨린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새누리당의 몰락을 낳았던 오만의 무덤이, 그들을 적폐라며 심판했던 민주당에 의해 똑같이 반복되는 현실은 차라리 희극이라 할 만하다. 정치란 이렇게도 어리석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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