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장' 류호진 PD가 고집을 넣어뒀을 때 벌어진 일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1. 4. 23. 13:45 수정 2021. 4. 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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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장', 뻔한 것 같은데 빠져드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자사 PD들을 상대로 게임판을 돌린 tvN <출장 십오야>에서 유호진 PD는 짠내 캐릭터로 등극했다. 외형적으로도 무리가 없었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비춰봐도 리얼리티를 담보로 하는 블랙코미디였다. 한때 전 국민이 사랑하는 대형 예능을 이끌던 스타PD로서 행보 하나하나가 기사화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은 시절도 있었지만 굴곡진 이직의 역사와 tvN 입성 후 연이어 받은 쓰디쓴 성적표를 선배 및 동료 PD들은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놀림을 받던 유호진 PD는 성공적인 반응과 시청률을 거두고 있는 <어쩌다 사장> 덕분에 본인 또한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웃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자 선배인 정종연 PD는 그 작은 틈마저 가만두지 않고 "조인성이 다한 거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충고(?)를 했다. 웃자고 한 이야기고 그로 인해 일반인에 가까운 PD들로도 캐릭터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 깃든 말이기도 했다.

<어쩌다 사장>은 PD 입장에서 철저히 잘된 팝업 스토어 콘셉트 예능의 작법을 연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잠시 넣어둔 결과다. 특히나 tvN 이적 후 드러낸 자기 색을 발현하려는 열망은 고이 접어뒀다. <1박2일>을 제작할 당시 유호진 PD의 장점으로 언급되던 메시지나 문화적 코드의 예능화, 캐릭터쇼 다지기 대신 철저하게 뒤로 빠져서 두 출연진과 이들의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래서 조인성과 차태현의 신박한 조합을 제외하면 사실 너무나 익숙하게 봤던 그림이 나오긴 한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평범한 삶의 행복을 담은 직속 선배인 나영석 사단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근간으로 삼고 최대한 따른다. 시골의 슬로우 라이프, 좋은 사람들과 정성을 담은 음식, 노동의 가치와 음악과 잔잔한 풍경, 무대에서 내려온 스타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며 전하는 인간적 매력은 익숙함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펼쳐지는 이야기도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별일 없는 하루 속에서 잔잔하고 소소한 재미가 피어난다. 이들이 운영하는 '상회'는 버스 회수권을 독점 판매하고, 슈퍼 속에 숍인 숍으로 식당 겸 술집까지 운영하는 나름 상업 수완이 돋보이는 가게처럼 보이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쉼터이자 저녁에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대폿집이며, 맛난 과자와 인형 뽑기가 기다리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한 동네 사랑방이다. 동네 사람들의 애정과 동네 사람들을 향한 사장님의 애정이 맞닿지 않았다면 존재하기 힘든 영화적인 장소다.

이 영화적 공간은 어느 날 갑자기 어쩌다 사장이 된 두 배우에게 열흘 간 살아야 하는 현실이 된다. 바코드로 입력하는 포스 시스템도 없고, 버스표는 전산화되지 않은 수기 장부로 기록한다. 메뉴도 딱히 없다. 일반적인 팝업 스토어 예능이라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서투름을 포착하고 난관 극복의 성장 서사에 집중하겠지만 <어쩌다 사장>은 1회 만에 이 부분을 졸업한다. 그리고 초반부터 이쪽 장르의 예능에서 양날의 검으로 여기는 게스트를 물량 투하해 활기를 채운다. 박보영을 시작으로 윤경호, 김재화, 박경혜, 신승환, 박병은, 남주혁, 박인비 가족, 동현배, 윤시윤 등 게스트의 인지도도 들쭉날쭉하다.

류호진 PD는 방송 초반 한 인터뷰에서 "더 많은 게스트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또한 좋은 주민들과 쌓여가는 관계망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관찰예능에서 게스트는 출연진만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울 때 환기 효과를 기대하는 장치다. 그런데 <어쩌다 사장>은 이런 염려나 예능 작법 차원의 스토리텔링을 건너뛴다. 그 대신, 긴 촬영 일정에서 담보되는 진정성과 엄청난 친화력으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차태현의 인간적 매력과 조인성의 예상 밖의 수더분함으로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쩌다 사장>식 익숙함의 미학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차태현이나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해내는 조인성의 역할과 함께 성장 서사가 아닌 볼거리로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더했다. 영화 촬영 스케줄을 방불케 하는 열흘간의 로케라는 진정성 있는 설정이 만든 새로운 재미들이다. 성장 서사를 건너 뛴 자리에 매번 새로운 게스트들이 등장해 활기를 더하고, 몇 번이나 마주한 만큼 동네 커뮤니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게스트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진정성의 집중은 <어쩌다 사장>이 뻔한 것 같은데 재밌는 이유, 소소하지만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의 '비법'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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