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가족 부양 위해 몇십 년 동안 배달 일..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기자 2021. 4.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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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 가난이 끝나냐." 시름에 젖어 진득한 고통만이 남은 엄마가 늘 일 나가기 전에 중얼거리던 말이다.

밤 12시쯤 배달 일 중간에 주린 배를 채우러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오토바이 소리, 식구들 깰까 봐 미리 꺼내놓은 찬밥을 식은 국에 말아먹느라 식기가 덜컹거리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배달 일을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는 소리까지 매해 매일 어김없이 들려온 엄마의 소리였다.

엄마가 몇십 년간 하던 배달일을 그만두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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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엄마께

“언제 이 가난이 끝나냐….” 시름에 젖어 진득한 고통만이 남은 엄마가 늘 일 나가기 전에 중얼거리던 말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대비해 옷을 두껍게 껴입는 엄마의 뒷모습을 현관문에서 배웅하노라면 어린 나이에도 심장이 단도로 도려지는 듯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일생 한량이던 아버지가 허리디스크로 앓다가 나아질 만하면 드러눕고 나아질 만하면 드러누운 것은 엄마의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었다. 엄마가 시집오기 전부터 고질병이었다던 허리디스크는 결혼과 동시에 심각하게 가정의 위기를 초래하는 병환이 됐고, 엄마에게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옮겨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은 차마 글로 풀 수 없을 만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깡총한 코르덴 바지를 입던 아이 때부터 나는 엄마가 일을 나가면 항상 문앞에서 엄마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것이 자식으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것 이전에 나 스스로 엄마에게 미안함을 상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엄마가 일을 나가려고 준비하면 항상 언제 집에 돌아오냐며 안 가면 안 되냐고 묻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이대로 나가서 안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내재돼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도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하던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을 몇십 년째 같은 동네에서 하고 계셨다. 나는 그때에도 엄마를 현관문에서 배웅하며 엄마에게 언제 올 거냐, 안 가면 안 되냐를 묻고 있었다.

엄마는 오후 6시에 시작되는 배달 일과의 시작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하셨다. 밤 12시쯤 배달 일 중간에 주린 배를 채우러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오토바이 소리, 식구들 깰까 봐 미리 꺼내놓은 찬밥을 식은 국에 말아먹느라 식기가 덜컹거리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배달 일을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는 소리까지 매해 매일 어김없이 들려온 엄마의 소리였다.

“엄마, 언제 들어와?” “엄마, 안 가면 안 돼?” 그것은 나와 엄마의 인사이자, 엄마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단발머리를 한 아이가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처녀가 될 때까지 말이다. 이제 얼마 후면 엄마와 나는 몇십 년간 반복된 배웅인사를 마치게 된다. 엄마가 몇십 년간 하던 배달일을 그만두시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파 드러누워 일을 못하게 되자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려고 시작한 신문·우유 배달일을 몇십 년 만에야 은퇴하게 됐다.

젊은 날 날쌔게 움직이던 엄마의 몸은 세월이 흘러 굼뜨고 몸에는 온갖 병과 후유증이 남았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항상 거칠고 하얗게 버짐이 일어나는 엄마의 손이 자식으로서 너무 가슴 아프다. 자식을 위해, 아픈 남편을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우리를 굶기지 않고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그저 앞만 보며 달려온 엄마, 나는 과연 엄마 같은 사랑을 내 자식들에게 줄 수 있을까?

이제는 쉼 없이 달려온 엄마 인생에 쉼표를 찍고 쉴 때가 됐다. 엄마, 자랑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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