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교사에게 존댓말을 쓰게 하면 어떨까

이대진 2021. 4. 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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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홍보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좋은 연구 성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공계 분야 한 교수님의 실험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반말과 존댓말 중 어떤 말을 구사하는지가 그의 인품이나 실험실 분위기를 보여주는 정확하고 유일한 징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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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대학 홍보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좋은 연구 성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공계 분야 한 교수님의 실험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연구 장비 옆에서 실험하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이 한 지도학생을 불러 말을 건넸다. “○○씨, 잠시만 장비 옆에서 같이 자세를 좀 취해볼까요?” “○○씨, 이거 촬영하는 데 수고 좀 해주겠어요?” 그 교수님은 적어도 내가 실험실에 머무는 동안은 모든 제자들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낯설었다. 수업시간도 아닌데, 학생에게 교수가, 존댓말을! 그것도 자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에게! 종종 실험실을 방문했을 때 접했던 교수와 지도학생의 대화는 “철수야~” “영희야~”로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다.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일을 시키는 가게 주인 같은 느낌이다.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반말과 존댓말 중 어떤 말을 구사하는지가 그의 인품이나 실험실 분위기를 보여주는 정확하고 유일한 징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의 존댓말이 교수-학생 사이의 관계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건 분명했다. 나중에 ‘김박사넷(대학원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검색한 그 교수님에 대한 학생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어떤 교수는 직원에게도 반말을 한다. 팀장급이나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직원들에게는 아니지만, 제자뻘이나 자녀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직원들에게 ‘편하게’ 말을 놓곤 한다. 회식 몇 번 해서 친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교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으신 걸까. 직원이 학생은 아닌데, 업무에서도 관계에서도 제자들 대하듯 한다.

선배 직원이 20~30대 후배 직원이나 학생들에게, 젊은 직원이 학생에게, 조금 안면을 텄다고 생각하면 슬쩍 말이 짧아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나름 친근함의 표시였는데, 불편함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학교에서 강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교원 업적평가에 교육 부문 평가 항목 중 하나로 ‘존댓말 지표’를 추가하는 것이다. 시범적으로 단과대 한 곳만이라도 학기말 강의평가 하듯이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교수의 ‘존댓말 지표’를 평가하게 하고, 반말을 했을 때와 달라진 점을 기술하게 한다면? 자존심 상하거나 ‘평가 노이로제’ 때문에 어렵다면, ‘존대합시다’ 캠페인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학생

고등학교와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수업뿐 아니라 모든 학교생활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하면 어떨까. 나아가 대학 캠퍼스를 포함한 전국의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선배와 후배, 연구자와 행정직원 등 모든 학내 구성원 사이에 존댓말을 의무화한다면? 존대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막말, 갑질, 성희롱 같은 행위를 하려면 뭔가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일상 속에 촘촘하게 들어선 서열의 그물을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니 모든 이가 서로 반말하는 상상보다, 모두가 모두를 존대해보자는 제안이 더 쉬워 보이지 않는가. 물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다만 초중고를 지나 대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교육 현장에서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대진 (필명·대학교 교직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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