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고급 시계는 품에 안지 못하더라도 초침과 분침 시침의 반복적인 동작들이 모여 이룬 시간이, 그 반복적인 노동을 고되게 하는 이들을 빛낼 수 있는 순간이 오길

최보윤 기자 2021. 4. 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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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최보윤 편집국 문화부 차장·더부티크 편집장

언제 봄이 왔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여름 같더군요. 여전히 ‘집콕’ 생활을 주로 해서 그런지 목련이 피었던 것도 집 앞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보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무리졌던 것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 알았습니다. 일을 끝마치고 밤에 보는 꽃잎은 어둠에 색이 바래 이 색이 저 색인지 그 꽃이 이 꽃이었는지 잘 모르겠더이다. 개나리는 피었었다는데, 어느새 진달래가 무더기입니다. 불평은 해도, 어쩌면 진달래라도 눈에 보이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봄 가을 패션위크 출장을 갔던 2년 전만 해도 출장을 가야 계절이 변화하는구나 느끼곤 했으니까요.

가장 객관적인 것이 시간이면서도 가장 주관적인 것이 시간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표기하기 위해 시계라는 도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각각의 시간에서 산다면 그것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도 없을 테니까요. 스위스 럭셔리 시계·주얼리 브랜드 쇼파드(Chopard)의 슈펠레 회장도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기계식 시계는 전자 제품이 사멸하는 시기에도 움직이고, 그 단단함으로 달에 가서도 망가지지 않고 여전히 제 몫을 다합니다. 허나, 거기서 같은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즐기느냐는 각자의 책임인 것이지요. 또한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도 시계를 통해 배웁니다. 기계식 시계 역시 사람이라는 ‘동력’이 있어야 운명하지 않고 제 소임을 다하게 됩니다. 그만큼 시계는 사람과 어쩌면 서로 의존적인 관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슈펠레 회장 역시 역작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손길을 통해 또 한 번 도전하게 되고, 그러한 시도가 있기에 기술과 예술은 계속 진화를 거듭할 것입니다.

지금 보면 다 성공한 이들 같은 이야기도 하나씩 파보면 숱하게 눈물겨운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제 앞길도, 주제도 모르며 요행만 바라던 이들은 시간이 주는 축적된 지혜 앞에 눈물 흘리고 후회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세속적 욕망으로 바라던 바를 다 이루는 듯했으나, 결국 허망한 삶이란 걸 깨닫는 조신의 꿈(調信之夢)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걸…. 초호화 고급 시계는 품에 안지 못하더라도 초침과 분침 시침의 반복적인 동작들이 모여 쌓여 이룬 정진근(精進根)과 정근(定根), 혜근(慧根) 등 오근(五根)의 시간이, 고되지만 가치있는 그 반복적인 노동을 기꺼이 하는 이들을 빛낼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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