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더 반짝였다.. 금, 너 괜찮은 거니?

김지섭 기자 2021. 4. 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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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금의 시대 막 내리나

1519년, 남미 유카탄 반도에 첫발을 디딘 스페인 정복자들과 아즈텍 원주민 간에는 도무지 공통점이라곤 없었다. 말도 의복도 풍습도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없었고, 의사 불통과 오해로 갈등만 쌓였다. 위태위태하던 두 문명 간의 벽을 허문 것은 우연히 발견한 공통점이었다. “(그들이 가져온) 선물에 우리는 놀랐고 또 기뻤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금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류 문명에서 금의 지위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특별했다.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 왕국이 국제 무역에 11.3g의 금으로 만든 셰켈(Shekel) 주화를 사용한 이후 금은 화폐의 대명사가 됐다. 로마 시대의 세계 경제를 지탱한 화폐는 라틴어 ‘금(Aurum)’에서 유래한 아우레우스(Aureus) 금화였다. 중국 문화권에서 한자 금(金)이 돈을 뜻하고, 독일어의 금(Gold)과 돈(Geld)이라는 단어가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영원할 줄만 알았던 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금값은 최근 다른 자산 가격이 모두 오르는 와중에 홀로 하락세다. 1온스(28.35g·7.56돈)당 20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것이 불과 지난해 8월인데, 이달 들어선 지난해 고점 대비 15% 떨어진 1700달러대를 횡보하면서 “금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은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에 맞서는 마지막 보루”라던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마저 향후 12개월간 금값 전망치를 2300달러에서 2000달러로 300달러(13%) 낮췄다. 금값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것이다. 세계 최대 금 ETF인 ‘SPDR골드트러스트(GLD)’와 ‘iShares골드트러스트(IAU)’ 가격은 올해 들어 모두 6.6%씩 하락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불확실한 시대의 안식처’로 통하던 금의 매력이 손상되고 있다”고까지 했다. ‘금의 시대’는 이대로 맥없이 저물고 마는 것일까.

◇“불안의 시대 끝나간다”

금은 녹이 슬지 않는 금속이다. 그 가치가 쉽게 바래지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금은 또 전도성이 가장 뛰어난 금속이고, 산업적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가공하기 쉽다. 각종 관(冠)과 반지, 목걸이 등 사람의 격을 높이는 귀한 장신구에 금이 쓰이는 이유다. 아즈텍인에게조차 금은 가치와 권력, 신(神)의 상징이었다.

실질적 가치에 불가사의한 매력까지 더해지면서 금은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킬 피난처(안전 자산)로 인식돼 왔다. 2001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 위기, 2016년 브렉시트,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 직후까지 ‘불안의 시대'가 닥칠 때마다 금값은 어김없이 올랐다.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 초기에도 주식 시장 붕괴에 놀란 부자들이 달러를 버리고 온통 금을 사들이면서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뱅크런(bank run·예금인출사태)이 벌어졌다.

금값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제 ‘불안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봉쇄 조치가 풀리고,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경기 회복세가 완연해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상 화폐에 돈이 몰리니 안전 자산인 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기에 현대 화폐 이론가(MMT)들이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얼마든지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장기적으로도 금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금과 금리: 경기의 빛과 그림자

장기적 금리 상승세가 금값을 계속 끌어내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금은 부동산, 주식처럼 가격의 오르내림으로 수익이 정해지는 자산이다. 실질 금리가 오르면 오를수록 이자 수익이 없는 금의 매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제로(0)에 가깝게 낮으면 낮을수록 금을 보유할 때의 기회 비용은 낮아지지만, 금리가 제법 높아지면 금의 안정성보다는 ‘이자 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금이 본격적인 약세장에 접어든 지난해 4분기는 공교롭게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때였다. 1온스당 금 선물(先物) 가격이 지난해 3월 1400달러대에서 8월 2069달러까지 갔다가 올해 1분기 1600달러까지 떨어지는 등락 과정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의 움직임과 정확히 반대로 갔다. 이 기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8월 0.512%까지 떨어졌다가 올 1분기에 1.7%대까지 올랐다.

금과 금리의 역(逆)상관관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더욱 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JP모건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금값은 평균적으로 온스당 80달러씩 떨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채권 금리 상승이 경제 낙관론의 신호로 해석되면서 금 투자자들이 금을 팔도록 부추겼다”는 전문가 의견들이 있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금 관련 투자를 모두 정리한 것도 바로 이때다. 대표적 금 강세론자였던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애널리스트도 최근 “실질금리가 오르고 있어 연말까지 금값이 165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이 금 역할 대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이들이 주장하는 금값 하락의 결정적 계기는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의 등장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풀린 막대한 시중 유동성이 상당 부분 가상 화폐로 몰리면서, 화폐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우려에 힘입어 올랐어야 할 금값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이 해야 할 역할을 비트코인이 상당 부분 대체하는 현상이 벌어졌단 얘기다.

가상 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비트코인 투자자 5명 중 1명(21.8%)은 투자 목적으로 ‘가치 보전’을 꼽았다는 설문 결과를 내놨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3분의 2 이상은 “비트코인을 금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같은 이유로 비트코인 보유를 주장했다. 때맞춰 “비트코인은 21세기의 ‘금’(金)이다”(시티은행 애널리스트 톰 피츠패트릭), “비트코인이 금의 자리를 갉아먹고 있다”(JP모건 애널리스트 니컬러스 파니거트조글루)는 등의 평가도 나왔다.

비트코인 가격은 금값과 정반대 그래프를 그리며 지난해 4분기 이후 6배로 급등했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이후 금 관련 ETF(상장지수펀드)의 금 보유량은 8.3% 줄어든 반면, 비트코인 투자에 쓰이는 실물자산 연동 가상 화폐(스테이블코인)의 순매입 규모는 같은 기간 130% 넘게 증가했다. 삼성증권 진종현 애널리스트는 “연초 이후 비트코인 가격을 보면 기대 인플레이션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면서 “완연한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금의 위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하지만 금값에 대한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최근 8개월 새 15% 정도 내린 금값의 하락세는 역사적으로 ‘완만한 수준'이며, 반등의 여지가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초 미국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자 금값은 2년 새 60% 넘게 폭락했고, 세계 경제가 금융 위기 쇼크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난 2013년 2분기에는 93년 만의 최대 폭인 25% 하락을 기록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트코인이 수천년 역사를 지닌 금의 위상을 1~2년 만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중앙은행이 여전히 금 보유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33t의 금을 갖고 있으며,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주요국은 물론 한국은행도 적지 않은 금(104t)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 신흥국 중앙은행은 금 사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석진 원자재&해외투자연구소장은 “시간이 흐르면 금 본연의 가치를 비트코인이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을 대신한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NH투자증권 황병진 애널리스트는 “실질 금리 상승 구간에서도 (금과 달리) 비트코인은 강세를 보이는데 이를 인플레이션 헤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금값 상승을 기대하는 시각들

일종의 순환 매매 관점에서 금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다른 자산들의 가격이 모두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금에 대한 투자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같은 ‘비실물자산'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부동산과 금 같은 실물 자산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블랙록의 에비 햄브로 분석가와 뉴스트리트 어드바이저그룹 CEO 델라노 사포루 등은 “신흥 시장의 수요 확대와 채굴량 감소 등 공급·수요 변화로 인해 금값이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미국 증권사 밀러타박도 “올해 금 가격이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한 인플레이션과 함께 실질 금리가 오르면서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의 가격이 동시 붕괴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자산의 일정 부분은 금으로 보유하라는 주장, 경기 회복 과정에서 물가가 치솟으면서 금값도 일시적으로 급등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결국 금의 운명을 쥔 것은 인플레이션 속도”라고 평가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불안을 야기해 금의 가치를 높이고,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금의 가치를 계속 떨어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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