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만 격려금? 이런 불공정 더는 못참아".. MZ세대 노조가 온다

신수지 기자 입력 2021. 4. 23. 03:12 수정 2021. 11. 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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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만 하는 기존 노조는 가라"

“역차별의 상징인 ‘그들만의 노조’를 바꿔야 합니다.” 30대로 추정되는 현대자동차 직원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 1980~2000년대 출생자) 화이트칼라(사무직)들이 기존 노동조합(노조)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올 들어 LG전자와 금호타이어에서 사무직 중심의 노조가 출범했고, 현대차그룹에서도 사무직 노조 설립 준비가 한창이다. 대형 제조업체와 비교해 노조 설립이 활발하지 않았던 IT(정보통신) 업계에서도 MZ세대를 중심으로 노조 설립 움직임이 거세다. 지난달 카카오뱅크가 인터넷 은행 최초로 노조를 설립했고, 한글과컴퓨터도 2004년 노조 해산 이후 17년 만에 다시 노조를 만들었다. 게임 업체에서도 노조 설립이 줄을 잇고 있다.

그래픽= 김영석

MZ세대들은 기존 노조를 “기성세대가 장악한 ‘꼰대 노조’”로 정의한다. 빨간 머리띠에 ‘투쟁’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기성세대 노조와 달리 ‘공정’과 ‘투명성’을 지향하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게 MZ세대 노조의 공통점이다. LG전자와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설립을 지원한 김경락 노무사(대상노무법인)는 “MZ세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만큼 다른 세대보다 ‘공정성’에 더욱 민감하다”며 “기업 내 비합리적인 관행이나 소통 창구 부재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고 했다.

◇MZ세대가 원하는 건 ‘공정한 보상’

MZ세대 노조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공정한 보상 체계’다. 기성 노조들이 일률적인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을 벌이던 것과 달리,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개인 성과에 합당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설립을 주도한 유준환(30) 노조위원장은 “첫 직장인 데다 4년 차 직원이 노조를 설립한다는 건 정말 큰 부담이었다”면서도 “깜깜이 임·단협에 지친 직원이 한둘이 아닌 걸 알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가입자는 설립 한 달 반 만에 벌써 3500명을 돌파했다. 유 위원장은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상황”이라며 “사무직에 대한 교섭권을 얻게 되면 임·단협 과정의 투명한 공개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로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는 이유로 노조와 임금 동결 등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무직 근로자들을 소외시킨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호타이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해 임금을 동결키로 하면서 생산직에만 격려금 100만원을 지급키로 합의했다. 결국 그동안 쌓였던 사무직 직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한 30대 금호타이어 사무직 직원은 “사무직의 의견이 꾸준히 임·단협에서 배제된 데다, 이번 격려금 차별 문제가 노조 설립의 기폭제가 됐다”며 “노조 가입이 안 되는 차·부장급 직원들도 생산직과의 차별에 대한 불만이 쌓여 사무직 노조 설립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사무직과 생산직 간 성과급에 대한 인식 차가 발단이 돼 사무직 직원의 별도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노조 설립을 위해 만들어진 소셜미디어(네이버 밴드) 가입자는 이미 4000명을 돌파했다. 대다수가 8년 차 이하 MZ세대 직원들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급은 지난 10년 내 최저치인 ‘기본급 150%+코로나 극복 격려금 120만원’으로 합의했다. 사무직 근로자들은 “노조가 임·단협에서 생산직 근로자의 이익에만 치중하느라 성과급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한 현대차 연구원은 “노조가 생산직들의 정년 연장과 시니어 촉탁직(정년퇴직자를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계속 고용하는 제도) 등, 생산직의 고용 안정을 관철하기 위해 임금 동결에 합의한 것”이라며 “사무·연구직의 임금을 희생시키는 노사 구조를 더는 두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 “응석받이 선배들 행태 부끄럽다”

이들은 단순히 성과급이 불만족스러웠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노조 설립에 동참한 한 현대차 계열사 직원은 “무조건 돈을 많이 달라는, 기성 노조와 같은 요구를 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라며 “사무직 근로자들도 조직 구성원으로서 사측에 정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 체계와 절차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MZ세대 노조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같은 상급 노동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파업과 농성을 앞세운 기존 노조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현대차 직원은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그동안 노조가 무논리와 억지, 응석받이 행태를 보일 때마다 어디 가서 현대차 직원이라고 말하기 창피했다”면서 “사무직 노조가 출범하면 이제 가슴을 좀 더 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썼다.

이들은 단순한 생존권 투쟁에서 나아가, 기업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사측과 함께 만들기 위해 조직 문화 및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 한다. 김한엽(34)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위원장은 “(한노총·민노총 등) 상급단체 지침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회사 경영 방침에 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을 답습하거나, 회사가 어려운데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임금 인상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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