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수사통 1명도 없는 공수처… 법조계 “대형사건 뭉개질 것”

금원섭 논설위원 2021. 4.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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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출범 100일 공수처는 지금…
금원섭 논설위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달 말 출범 100일을 맞는다. 김진욱 처장, 여운국 차장에 이어 검사 13명이 임명됐지만 대부분 수사 경험이 없는 데다 정원도 못 채웠다.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까지 수사할 수 있고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강제 이첩받을 수도 있는데 정권과 검찰 앞에서는 움츠러든다. 문재인 대통령 수족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피의자로 조사받으러 오는데 공수처장이 본인 관용차로 모셨다.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넘기며 수사만 하고 기소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검찰은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직접 기소해버렸다. 문 정권은 공수처를 야당 정치인, 지난 정부 고위직 출신과 현 여권 내 반대파를 치는 ‘정권의 칼’로 쓰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공수처가 약체 검사들로 꾸려지자 여당에서 “공수처가 내실 있는 진용을 갖추는 것부터 뒷받침해야 한다”는 불만 섞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 공약에 따라 여당이 강행한 공수처가 왜 이렇게 됐을까.

윤석열 찍어내기 카드로 졸속 출범

지금의 공수처는 작년 12월 공수처 설치법 개정으로 출범했다. 야당이 가진 공수처장 임명 반대권을 박탈하는 법 개정을 여당이 강행 처리했다. 문 대통령은 법 처리 당일 “새해 벽두 공수처가 출범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공수처 출범을 서둘렀다.

당시 여권은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윤 총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조국 전 장관 일가의 파렴치 범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 정권이 저지른 불법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정권은 그를 상대로 세 차례 수사 지휘권 행사, 네 차례 인사 학살, 감찰과 징계 청구를 잇따라 휘둘렀다. 여권은 윤 총장 찍어내기를 위한 또 하나의 카드로 공수처를 꺼내 들었다. 야당을 배제한 채 공수처 출범을 강행하며 ‘윤 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며 겁박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이달 말 취임 100일을 맞는다. 그의 취임과 함께 출범한 공수처는 특수수사 경험 있는 검사 확보, 다른 수사 기관들과의 권한 조정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김 처장이 지난 2월 관훈클럽 주최 포럼에서 ‘민주공화국과 법의 지배’를 주제로 기조발언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공수처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여권이 윤 총장에게 사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수처 출범을 속도전식으로 해치웠다”며 “여권은 공수처 출범에만 관심이 있었고 공수처가 수사기관으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는 사실상 없었다”고 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 21일 문 대통령이 김 처장을 임명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이후 80여일간 공수처는 검사 한 명 없이 사실상 김 처장 1인 조직으로 움직이는 ‘나 홀로 공수처’로 남았다. 정치권에서는 “공수처가 출범해도 윤 총장이 사퇴하지 않자 여권이 공수처를 ‘버린 카드’로 생각하고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여권은 공수처는 제쳐둔 채 검찰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는 법안을 새로운 카드로 꺼내 윤 총장 사퇴를 다시 압박했고 결국 성공했다.

김 처장 취임 후 공수처의 가장 큰 사건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였다. 피의자로 조사받으러 오는 이지검장에게 김 처장이 본인의 관용차를 보내 모셔오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공수처가 대통령 수족에게 황제 조사 특혜를 주면서 정권 수호처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강하게 받았다.

공수처장 “황제 조사, 일 커질 줄 몰랐다”

김 처장은 지인에게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인권 친화 차원에서 사건 당사자를 충분히 만나주겠다는 취임 전 약속을 지켰을 뿐인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다.

김 처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변호사는 “한마디로 경험 부족 탓”이라고 했다. 김 처장은 임명 당시 법조계에서도 “김진욱이 도대체 누구냐”는 말이 나왔다. 그 정도로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는 3년간 판사, 12년간 로펌 변호사 생활을 한 뒤 2010년부터 헌법재판소 연구관 등으로 일했다. 수사 지휘나 조직 운영 경험이 거의 없다. 유일한 수사 경험은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검에서 2개월간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까지 조사할 수 있는 수사기관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경력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 처장이 아무 생각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수사기관장이 피의자를 직접 만나준다는 것은 ‘안 될 일’이라는 판단이 서야 하는데 그가 전혀 고민을 안 했다는 지적이다.

공수처 검사 임명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법조인은 “지금 공수처는 뇌 수술, 심장 수술 해야 하는데 외과 의사가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국민적 의혹이 있는 대형 사건을 공수처가 맡더라도 수사를 제대로 못 할 테니 억지로 뭉개려 하지 않아도 그냥 뭉개질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는 처장, 차장을 포함해 검사 25명 중 15명을 겨우 채운 ‘정원 미달’ 상태다. 수사 경력이 있는 검사는 검찰 출신인 4명뿐이다. 이들도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이 연루된 대형 범죄를 파헤치는 특수 수사 경험은 없다고 한다. 공수처 수사를 지휘하는 김 처장과 여 차장도 판사, 변호사 등 수사와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서 법조인 생활을 해왔다.

공수처가 특수 수사 인력을 자체 양성하기도 힘들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검사 2500명 중에 에이스를 선발해 여러 해 훈련시켜 특수 수사를 맡길 수 있지만 공수처는 검사 정원이 25명뿐이고 임기도 3년씩이라 그럴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자리 잡으려면 성장통 겪을 것”

법조계에서는 “‘1호 사건' 수사가 공수처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처장도 첫 수사 대상 선정을 고심 중이다. 이미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만 1000건에 가깝다고 한다.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을 찾아내 살아 있는 권력의 범죄를 잡는다면 공수처는 수사기관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공수처 내부 사정에 밝은 법조인은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 상당수는 단순 고소·고발”이라며 “전국적 첩보 수집 기능이 부족한 공수처가 단기간에 대형 범죄를 발굴해 수사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이 본 김진욱 처장]

“로펌 고객 대하듯 친절이 몸에 밴 사람” “강단있는 친구… 좀 두고 보면 알 것”

“김진욱 공수처장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법조인들에게 물어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최근 공수처 회의 중에 쉬는 시간이 되자 김 처장이 직접 커피와 과자를 가져오더니 다른 참석자들에게 권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했지만 김 처장은 “다들 고생하시는데 제가 이 정도는 해야죠”라고 했다고 한다.

김 처장의 ‘착함’ ‘친절함’은 타고난 성격과 12년간 로펌 변호사 생활에서 다져진 것으로 보인다. 김 처장과 공수처 업무로 알게 된 한 변호사는 “김 처장이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한 탓에 누구를 만나도 클라이언트(로펌 고객)를 모시는 수준으로 응대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김 처장이 피의자의 범죄를 추궁하는 수사기관장으로 변신하려면 자신의 성격과 사회 경험을 뛰어넘는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처장의 언론 대응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공수처는 이성윤 지검장 황제 조사를 언론에 해명하다가 거짓말 논란만 키웠다. 공수처는 보도 자료에서 ‘관용차가 처장 차, 체포 피의자 호송차 등 2대뿐이었고 호송차는 뒷문이 열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처장 차를 썼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김 처장은 허위 공문서 혐의로 고발당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수사를 하려면 언론을 잘 알아야 하는데 김 처장은 언론 대응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김 처장과 근무 인연이 있는 한 변호사는 “그 사람 만만치 않다” “강단 있는 친구”라고 했다.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임기 1년쯤 남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른 법조인은 “김 처장이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니 그에게 성과를 낼 만한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헌법재판소도 1989년 출범해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맡은 뒤에야 국민이 인정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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