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대박부동산', 주거 불안 시대의 유령들

김선영 TV평론가 2021. 4.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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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KBS 드라마 <대박부동산>의 한 장면.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 일명 ‘귀신 들린 집’은 호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 안에서 초현실적 존재에 의해 고통당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와 한국이 각각 유령의 집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서양의 헌티드 하우스는 악마적 힘에 지배당한 공간인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한국의 귀신 들린 집은 대부분 한 맺힌 원귀들이 배회하는 곳이다.

김선영 TV평론가

한국의 헌티드 하우스 묘사는 우리 사회에서 집이 차지하는 특별한 의미에서 비롯된다. 영화 <기생충>이 잘 그려냈듯, 한국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계층 격차를 드러내는 노골적인 지표다. <기생충>에서 최하위층의 거주자들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기생충>이 만약 호러 영화였다면, 박사장(이선균)의 드넓은 저택은 생의 밑바닥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한 원혼들에게 점령당한 헌티드 하우스로 묘사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귀신 들린 집의 한국적 맥락을 오컬트 호러의 문법에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해 눈길을 끈다. 지난 14일 첫 회를 내보낸 KBS 수목드라마 <대박부동산> 얘기다. 이 작품은 다양한 귀신 들린 집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퇴마사 겸 공인중개사인 주인공 홍지아(장나라)는 의뢰를 받아 집에 붙은 각종 귀신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고 주변 시세에 맞춰 집 매매까지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의뢰의 내용은 매번 달라도, 그가 퇴마 과정에서 만나는 유령들이 무시무시한 악귀라기보다 서럽고 한 맺힌 원귀에 가깝다는 점만은 일관된 특징이다. 거주지에 정착하지 못한 불안정한 위치의 존재들은 눈을 감은 뒤에야 그토록 원했던 집의 지박령이 된다. 단적인 예로 대박부동산을 처음 찾은 의뢰인의 집은 ‘작년에 쫓겨나 교통사고로 사망한 세입자’의 원귀가 붙은 곳이었다.

이러한 귀신들의 속성은 본격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홍지아는 드림오피스텔이라는 이름의 건물 퇴마 의뢰를 받는다. 건설사 도산 이후 경매로 넘어간 이 오피스텔은 분양권을 구매했다가 공사 중단으로 좌절한 피해자들의 투신 장소이기도 했다. 뉴스는 이 투신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은 ‘영끌’ 시대의 허망한 죽음으로 보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꿈의 오피스텔은 입주자들이 줄줄이 죽거나 다치는, 귀신 들린 악몽의 집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지아가 맞닥뜨린 귀신들은 오피스텔에 안착하지 못한 채 추락을 거듭하는 원혼들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홍지아는 국내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브리티움을 떠도는 ‘부유령’을 퇴치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귀신의 정체를 파악해나가는 과정에서 지아는 그가 대한민국 미술계의 전설로 존경받는 거장의 대작을 담당한 화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름도 없이 유명 화가를 대신해 그림을 그렸던 ‘유령 작가’의 희미한 실존은, 계약서도 없이 건물 한 곳에 숨어 살았던 그의 불안한 거주 상태로 은유된다.

드라마는 가장 중요한 초반부 두 에피소드를 통해 이 작품이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 이면에서 불안에 시달리는 유령들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주요 에피소드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다. ‘대박부동산’ 건물 자체가 매일같이 용역들이 찾아와 철거를 노리는, 재건축 부지의 오래된 집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주인공 오인범(정용화)은 “대한민국에서 성실하게 돈 모아봤자 대출 안 끼고 집을 어떻게 사느냐”고 대놓고 묻는 인물이다. 일찌감치 정착을 포기한 그는 뚜렷한 거주지 없이 호텔을 옮겨가며 생활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제작 발표회 당시 앞으로 1인 가구 여성의 삶, 고독사, 유산 상속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집에 관련된 사회문제를 계속 그려나가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초반부의 <대박부동산>은 주거 불안 시대 한국 사회의 그늘을 가장 흥미롭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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