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의 시대가 끝을 향하고 있다

박성민 2021. 4.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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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친박’과 ‘친문’ 패권, 퇴행의 시대 10년
무능·위선·부패에 절망한 유권자 지지 철회
2030세대 민주당 지지서 빠르게 이탈
사상 유례없이 ‘스윙 보터’ 늘어나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린 10년은 대한민국의 ‘잃어버린 시간’이다. 10년 전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면 그나마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2011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도무지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과거로 돌아가 헤매고 있다.

이른바 ‘친박’과 ‘친문’ 패권 10년은 퇴행의 시대였다. 사가 공을 압도했고, 과거가 미래를 질식시켰다. 기득권이 혁신을 가로막았고, 낡음이 새로움을 지배했다. 분열의 언어가 통합을 물어뜯었고, 천박한 말이 지성을 조롱했다. 공적 책임은 거추장스러워졌다.

10년 사이 우리 사회는 생각하는 힘을 잃었고, 질문하는 능력을 잊었다. 생각도 안 하고 제대로 묻지도 못하니 혁신이 될 리가 없다. 혁신이 없으니 오히려 온갖 곳에 혁신을 갖다 붙였다. 혁신의 과잉은 혁신의 부재다. 민주정의당 시대에 정의가 없었듯 개혁의 시대에도 개혁이 없다. 공정과 정의마저 싸구려 부적처럼 소비되었다.

/그래픽=양인성

최진석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빠진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왜 아직도 (민주당에선) 친일 잔재 청산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반도체 문제는 이슈가 되지 않는가”라고 일갈했다.

뒤를 보고 걸으면 빨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멀리 갈 수도 없다. 사법이 과거의 문제를 심판하고, 행정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정치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는 뭘 해야 하는지, 그 일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물며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랴.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지난 10년간 사실상 ‘대통령 (리더십) 부재’ 상황이다. 전략 컨트롤 타워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리더십 부재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전략의 부재로 이어졌다. 하필 그 시기에 주어진 외교·안보 숙제는 너무 버거웠다. ‘핵무기 보유국’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됐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은 안보 동맹보다 훨씬 처신이 어려운 ‘기술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자칫하면 생존 기반인 산업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모호한 처신’은 ‘모호한 처지’가 될 뿐이다.

내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대한 선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여전히 ‘친박’과 ‘친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당에서 금기어 혹은 성역화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문제는 요 몇 년 보수 정당의 ‘탄핵’과 같이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을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2012년, 2016년 두 번의 ‘박근혜 공천’은 개혁적 목소리를 위축시키고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당으로 만들었다. 수구적 ‘친박’의 행태는 선거 네 번을 참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그러니 2012년, 2016년, 2020년 무려 세 번의 ‘문재인 공천’으로 만들어진 ‘친문’이 단 한 번의 패배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24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국회의원들이 뭐가 절박하겠는가. 2016년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 후 친박 핵심인 이정현을 당 대표로 뽑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다.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게 정치의 본령이지만 ‘친박’과 ‘친문’은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원리주의’를 닮았다. 정치는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를 잃었다. 지도자가 사라진 시대다. ‘Lead or Leave’. 무능한 정치인들은 이끌지도 못 하면서 사익을 챙기느라 떠나지도 않는다.

이들의 무능·위선·부패에 절망한 유권자들이 지지를 철회하면서 사상 유례없이 ‘스윙보터’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의 권리를 빼앗는 ‘불공정’에 분노한 ’2030 MZ세대'가 민주당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정당 일체감이 약한 중도 스윙보터가 크게 늘어나면서 대선 판도까지 좌우할 기세다.

‘중도 유동성 장세’가 강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과 만나면서 제3지대 성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제3지대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3지대 후보가 없었던 적도 한 번도 없다. 사실상 양자 대결이 된 2002년과 2012년 대선도 후보 등록 하루 전까지 정몽준·안철수라는 강력한 제3후보가 있었다.

제3후보는 1당과 2당 중 한쪽의 리더십과 지지 기반이 흔들릴 때 불려나오지만 (정체성이 강한) 1당과 2당 후보의 경쟁력이 회복되는 순간 냉정한 현실을 마주한다. 안철수가 오세훈에게 패한 과정도 똑같은 패턴이었다. 결국 제3지대 후보가 승리하려면 (한쪽이 아니라) 1당과 2당의 지지 기반이 동시에 흔들려야 한다.

만약에 민주당 후보의 지지 기반이 1997년 김대중, 2002년 이회창, 2012년 박근혜와 같이 굳건하다면 제3지대 후보인 윤석열은 처음부터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윤석열의 행보를 결정하는 변수는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 여부다.

지금은 여론 지형과 정치 지형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여론은 분명하게 정권 교체를 지지하고 있지만 정치 지형은 국민의힘, 무소속 홍준표, 제3지대의 윤석열·안철수로 분열되어 있다. 야권의 과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여론 지형과 정치 지형을 일치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윤석열은 명분상 국민의힘 경선 참여보다는 제3지대로 끝까지 완주하거나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홍준표는 국민의힘에 복당할 것이다. 안철수는 대선에 안 나간다면 제3지대에 머무르는 것이 좋지만 나갈 생각이라면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국민의힘 후보는 홍준표·원희룡·유승민·안철수 중에서 나올 것이다. 국민의힘 경선이 본격화하면 이들의 지지율도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분명한 것은 ‘친박’과 ‘친문’의 시대가 끝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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