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커피 구독하실래요?
[경향신문]
요즘 나는 커피를 구독한다. 구독처는 ‘커피의 메카’로 불리는 강원도 강릉의 작은 로스터리다.
계기는 단순했다. 강릉에 사는 지인이 나를 만날 때 두세 번 이곳의 커피를 선물로 사왔다. 밀봉된 드립백 10개가 들어 있는 박스였다. 한 봉에 1000원꼴이었다. 이 드립백은 갈아놓은 원두 10여g을 종이백에 넣어 놓았고, 나는 그저 끓여서 조금 식힌 물을 종이백에 부어 커피를 내려 마시면 됐다. 간편했다.
커피의 원산지가 제각각이었다. 에티오피아·브라질처럼 잘 알려진 지역 원두도 있었고, 부룬디·엘살바도르같이 다소 생소한 지역의 원두도 있었다. 미리 갈아놓은 원두이지만 지역적 특색을 쉽게 느낄 만큼 풍미가 괜찮았다.
이내 나는 이 커피상자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 커피는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지리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요리 초보 시절, 정향·넛맥 등 열대 향신료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즐거웠다.
최근 먹어본 커피 가운데에는 르완다와 엘살바도르 커피가 기억에 남는다. 케냐와 가까운 르완다의 카베자 내추럴AA는 케냐 피베리의 견과류 향으로 시작해 케냐AA의 상큼한 맛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엘살바도르 SHG는 균형 잡힌 고소함이 좋았다.
비록 문자로 주문하고 계좌 이체라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결제하고 있지만 나의 이런 커피 소비 패턴은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구독경제의 하나다. 구독경제는 일정한 금액을 미리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거래 유형이다. 복잡한 경제용어처럼 보이지만 신문과 우유 배달이 대표적인 구독경제 서비스다.
최근 구독경제는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신선식품을 공급하는 기업과 영상 콘텐츠를 공급하는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의 성장률은 코로나 와중에도 가파르다. 미국에서는 자가용 비행기나 인공위성까지도 구독할 수 있다. 구독경제는 전 세계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하다. 그래서 2023년에는 세계 기업의 75%가 구독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음식은 구독경제의 핵심이다. 의류, 화장품, 콘텐츠 등의 구독서비스와 달리 음식 구독서비스는 소비자의 절독률이 높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의 먹거리 걱정을 해결해주는 편익 때문이다.
나 역시 당분간 ‘강릉 커피’를 절독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 커피와 함께 구독할 커피를 찾고 있다. 합리적 비용으로 더 다양한 커피를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유기농 공정커피로만 구독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배전의 강약과 다양한 풍미의 원두를 갖춘 업체도 있다. 국내에도 비슷한 업체들이 곧 등장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업체들이 나의 구매 데이터를 활용해 나도 모르던 내 커피 취향을 발견해주길 바란다. ‘편리함’이나 ‘회원 할인’ 말고 개인 취향의 발견과 확장이 내가 기대하는 구독경제의 미덕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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