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美·中 경쟁 속 열리는 한미정상회담

文 대통령·바이든 5월 첫 대면
백신확보·비핵화 등 조율 핵심
美·中, 기술 패권 갈수록 악화
동맹·제약 사이 사안별 대응을

다음 달 하순에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미·중 패권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서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아직 정상회담 의제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 핵심사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코로나 백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K방역의 성과가 무색할 정도로 백신 확보 전쟁에서 완패한 문재인정부에게 지금 백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미국이 이미 넘치게 확보해 둔 백신을 나눠 받으려면 한국은 반대급부로 무엇을 줄 것인가? 백신을 대가로 한국이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반도체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전략경쟁은 반중 기술패권전쟁으로 확대되는 중이고 그 최전선에 있는 게 반도체 문제다. 반도체는 미래의 무기, 안보문제의 핵심이다. 백악관이 직접 글로벌 반도체 패권 장악을 위한 전략회의를 주재한 것은 그 때문이다. 회의 막판에 화상으로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19개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미국 내 투자를 독려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둘째, 대북정책 조율을 마무리짓고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는 거의 마무리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간 대북정책의 최종 조율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한미 간에 정책 목표와 추진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재인정부는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올인했으나 북한의 한국 패싱으로 한계에 봉착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비핵화 진도와 평화프로세스의 진도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조율하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화·협상과 더불어 일정 수준의 제재가 지속되는 것이 북한을 움직이게 만드는 현실적 방안이다.

셋째, 바이든 행정부가 중시하는 가치규범 외교와 동맹 네트워크 확대에 있어서 한국의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핵심 축은 두 가지로서, 첫째 가치·규범외교, 둘째 동맹과 우방의 네트워크 및 다자협력,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다. 그동안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미국이 중시하는 대부분의 이슈들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채 분명한 입장 표명을 주저해 왔다. 쿼드 플러스에 한국의 참여를 원하는 미국의 시그널은 이미 여러 경로로 감지돼 왔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미국의 공식적 요청이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아시아 차르’에 임명된 커트 캠벨은 모든 이슈를 다루는 대규모 다자주의보다는 개별 사안에 초점을 맞춘 ‘D-10’ 같은 맞춤형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 간 경쟁을 기술민주주의(techno democracy) 대 기술독재국가(techno autocracy) 사이의 기술패권경쟁으로 규정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기술 선진국가 12개국을 ‘T-12’로 규합하려고 한다. 미·중 경제권의 디커플링을 겨냥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도 추진 중이다.

가치·규범 외교와 동맹의 네트워크 참여에 한국이 미적댈수록 한국을 보는 워싱턴의 시각은 악화되는 반면 그에 비례해서 중국의 대한국 시각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워싱턴의 분위기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이중헤징(double hedging)’을 추구하며, 갈수록 미국의 동맹네트워크에서 ‘약한 고리’로 추락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 미·중이 사활을 걸고 격돌하는 경쟁 사안들은 대부분이 제로섬게임의 성격을 지닌 이슈들이다. 결국 한국은 사안에 따라 선택해야 할 것과 적절한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끌고 나가야 할 사안으로 구분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상호간 동맹의 기대수준과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