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 연체, 정부가 갚아줄게.. '세금 먹는 카드' 논란

김효인 기자 2021. 4. 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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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발급 추진 '햇살론 카드'에 우려 목소리

“서민 취약 계층의 금융 상품 선택권을 확대하고, 카드 업계에서도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등 ‘윈윈(win-win)’ 정책이다.”(정부)

“금융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정책이다.”(전문가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겠다는 정부의 ‘햇살론카드' 방침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저신용자를 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부담해야 할 저소득층 복지 비용을 민간 금융사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용' 없는 자에게 발급하는 신용카드?

올 하반기에 도입되는 햇살론카드는 신용 평점 하위 10% 이하(과거 신용등급 7등급 이하)여서 신용카드 발급을 받기 힘든 서민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신용 관리 교육을 3시간 이상 이수하고, 소득이 증빙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월 최대 한도는 200만원이다. 현재 카드사들은 부실을 우려해 신용등급 7등급 이하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햇살론카드 정책 도입의 이유로 저신용·저소득층이 무이자 할부, 청구할인 등 신용카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상환 의지가 있고 연체 문제가 없는 저신용, 저소득 서민층에게 금융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이 신용카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카드의 핵심은 자신의 신용을 기반으로 금융 생활을 한다는 것인데 햇살론카드는 그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금융 기관의 위험 관리에 영향을 미쳐 전체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높이게 된다”고 했다.

신용카드를 서민 금융 지원책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신업계 관계자는 “부실을 우려해 마구잡이로 카드 발급을 해주는 업체를 규제하는 경우는 많아도 정부가 나서서 저신용자에게 카드를 발급하라고 하는 경우는 못 봤다”고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정책 제안 시) 해외 사례는 참고하지 않았지만, 국내에는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 조정 받은 성실 채무 상환자에게 체크카드 발급을 해주는 등 유사한 사례가 있어왔다”고 했다.

◇”연체 발생 시 정부 재원 들인다니… 부실 유발”

햇살론카드와 관련해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연체 등 부실 발생 시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느냐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보증 비율 100%로 운영될 예정이므로 연체 시 카드업계의 부담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 보증 비용은 결국 여신업계의 서민금융 출연금과 정부 예산으로 메꿔지는 것이어서 ‘업계 돈으로 정부가 생색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햇살론카드는 서민금융진흥원이 보증을 서는데, 진흥원의 재원은 금융권에서 내는 ‘서민금융 출연금’과 정부 예산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서민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사들은 가계 대출 잔액의 최대 0.03% 수준에서 출연금을 내야 한다. 여신전문금융업권은 연 189억원(2019년 기준)의 출연 의무가 생긴다. 여기에 서민금융에 책정된 정부 재원을 더해 햇살론카드의 연체를 보증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햇살론카드와 같은 적용 대상을 가진 대출 상품인 ‘햇살론 17’의 평균 연체율은 8%로 가계 대출 평균 연체율(0.2~0.3%)보다 30배 이상 높다. 또 대위 변제율(채무자가 빚을 못 갚아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비율)이 지난해 말 5%대까지 올랐다. 금융 당국은 “서민 금융 지원에 정부 재원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며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라고 했다. 그러나 성 교수는 “서민층에게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면 정책 대출 등의 방안으로 지원해야지 ‘연체가 발생하면 정부가 막아준다’고 해서는 부실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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