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에 할 말 한 죄..규제 빌미 주고 '성공신화' 기로에 [시스루 피플]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2021. 4. 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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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경향신문]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2015년 6월15일 일본 지바현 마이하마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의 가정용 로봇 ‘페퍼’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 창업 초기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마윈과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손 마사요시)는 돈독한 사이로 알려졌다. 마이하마 | 로이터연합뉴스
자유분방·거침없는 스타일
작년 10월 금융감독 정책에
“전당포식 사고” 비판 발언
중 당국, 앤트그룹 규제 강화
‘인터넷 공룡’ 길들이기 나서
다른 기업들까지 잇단 벌금
당의 권위 넘보지 못하도록
민간 기업 영향력 견제 의도

작은 체구에 볼품없는 외모를 지녔다. KFC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24명 중 한 명만 떨어졌는데, 불합격자가 바로 그였다. 3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대학 영어 강사로 취업해 그가 받은 첫 월급은 90위안(약 1만5000원) 정도였다. 이 청년은 20여년 후 아시아 최고 부호로 등극하며 ‘흙수저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중국의 빌 게이츠’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이 반전 있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다시 한번 반전의 기로에 서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 얘기다.

마윈은 중국 기업인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인물이다. 가죽 재킷을 입고 로커로 변신해 대중 앞에 서거나 마이클 잭슨 춤을 따라 추는 그의 모습은 때로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거나 파격적으로 비쳤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런 스타일이 발목을 잡은 것일까. 마윈은 지난해 중국 금융당국을 겨냥한 발언 때문에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을 맞고 있다.

마윈은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서밋에서 당국의 보수적인 금융감독 정책을 비판하면서 “중국에는 제대로 된 금융시스템이 없고, 신용이 아니라 담보에 기반한 금융권의 ‘전당포식’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그룹 같은 핀테크(정보기술을 결합한 금융 서비스)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들이었다. 앤트그룹은 중국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회사로 소액 신용 대출 서비스를 겸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금융감독기관은 앤트그룹의 소액 대출 사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며칠 뒤에는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증시 상장 절차가 중단됐다. 시장감독관리총국은 반독점 조사에 들어가 알리바바에 182억2800만위안(약 3조11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앤트그룹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돼 당국의 감독 아래로 들어가며, 마윈은 그룹에서 손을 뗄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중국 규제당국의 칼날은 마윈과 알리바바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징둥과 텐센트, 바이두, 디디추싱 등 다른 대형 인터넷 기업들에도 최근 몇 달간 불공정 경쟁행위와 반독점법 위반 등을 이유로 잇따라 벌금이 부과됐다. 중국이 비대해진 ‘인터넷 공룡’들을 겨냥하고 있는데 그 선두에 있던 마윈이 구실을 만들어 준 셈이다.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을 키우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거대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은 중국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 규제당국의 행보는 순수한 의도로만 읽히지 않는다.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주의 국가다. 누구도 공산당의 권위를 넘봐서는 안 된다. 중국의 규제 움직임은 민간 기업의 영향력이 당과 정부의 권력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알리바바를 본보기로 삼은 중국의 인터넷 공룡 길들이기는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시장감독관리총국이 주요 인터넷 기업을 소집한 뒤 바이두와 징둥, 텐센트, 디디추싱 등이 줄줄이 법률을 준수하고 반독점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내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에서는 기업이 규제 압력에 저항해 법정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지만 중국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반독점 규제의 정치적 의미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중국에서는 당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깼다가 한순간에 추락한 기업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등을 놓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광대’에 비유한 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부동산 거물 런즈창(任志强)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최대 민영보험사였던 안방보험을 만든 우샤오후이(吳小暉)가 2017년 부패 혐의로 체포돼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1조원대 개인 자산을 몰수당한 일도 있었다. 투자회사 밍톈그룹의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은 같은 해 실종돼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밍톈그룹 산하 9개 기업은 지난해 중국 정부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동안 마윈의 행보는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당과 보조를 맞추는 마화텅(馬化騰) 텐센트 회장이나 현재 중국 최고 부자가 됐지만 대외활동이 거의 없어 ‘신비의 부호’로 불리는 중산산 농푸산취안 회장의 모습과 비교돼 왔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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