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 슈테판 츠바이크 [이오진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나는 세상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굳건해 보이는 것들에 균열이 나야 하고, 균열을 내려면 소리를 내야 한다. 나는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연극을 택했다. 고함치듯 글을 쓰고 달려 나가 공연을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나름의 확신을 갖고 글을 쓰고 연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불안이 시작된다. 내가 쓴 글과 내가 한 말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밤이다. 그럴 때 나는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지켜낸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는다. 수련하듯 하루를 살아내며 고요 속에서 고유함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글 말이다.
<위로하는 정신>은 20세기의 슈테판 츠바이크가 16세기의 몽테뉴에 대해 쓴 전기(傳記)이다. 몽테뉴는 종교전쟁으로 유럽이 파국의 길을 걷던 16세기의 철학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고 브라질에서 목숨을 끊은 작가이다. 나치의 시대였다.
몽테뉴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본인의 서재 천장에 라틴어 격언 54개를 새겼다고 한다. 54개 중 마지막 것만 불어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어떤 글은 나를 꼿꼿이 세우고 뚜벅뚜벅 걷게 한다. 자세를 다시 잡고 눈을 바로 뜨게 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팔자걸음을 고치고, 길에 있는 나무와 풀도 꼼꼼히 들여다보게 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강인함을 덧입고 걷는 길은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세계이다.
“너 자신 말고는 그 무엇도 너의 자아를 귀하거나 비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가장 힘든 압력도 내적으로 확고하고 자유로운 사람을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한다.” <위로하는 정신>은 츠바이크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책이다.
이오진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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