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숙현 선수 죽음 산재 인정이 스포츠계에 던진 과제
[경향신문]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근 만장일치로 최 선수의 죽음을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으로 판정했다. 팀내 가혹행위로 정신적 압박감이 가중되며 인식 능력이 뚜렷하게 낮아진 적응장애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 업무 연관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스포츠계에서 직장 내 왕따·괴롭힘·폭행 등 가혹행위로 인한 산재가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그간 개인 간 문제로 여겨졌던 스포츠폭력을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전기가 마련됐다.
판정위는 최 선수가 직장에서 당한 가혹행위를 죽음의 원인으로 봤다. 소속팀 업무 수행 과정에서 감독·선배 등의 상습적인 폭행·강요·따돌림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또 최 선수가 성적에 따라 연봉 삭감이나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는 연봉계약직 실업팀 선수라는 점도 주목했다. 경주시체육회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온 최 선수가 직업 불안정 탓에 받은 업무상 부담 또한 사망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성적 때문에 늘 지도자나 선배·동료들 눈치를 보고 훈련시간 외에도 통제를 받은 점도 감안했다. 이 모든 것이 직장과 업무 현장에서 빚어진 일인 만큼 최 선수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판단한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산재 인정으로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인 가해자들의 혐의가 업무상과실치사로 바뀔 수 있다. 검찰은 이전까지 가해자들에게 최 선수의 죽음과 직접 연관이 없다며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했다. 또 인사·노무와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경주시청,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등 상급 기관에 대한 노동 관련 법 위반 여부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면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
최 선수가 숨진 후 스포츠계 인권침해 신고와 처벌을 강화한 ‘최숙현법’이 만들어지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됐다. 하지만 스포츠폭력의 근원인 성적 중심의 시스템은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직장팀뿐 아니라 학교 운동부 안의 폭력적 통제 관행을 규제·예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스포츠계의 잘못된 위계 문화와 성적지상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비극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번 산재 인정은 선수를 팀의 부속품이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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