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고, 사라지고, 잃어버리고.. 현대인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

김예진 2021. 4.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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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
강철규 작가의 대형회화 작품 '관통'
성장기 상처·결핍·분노 켜켜이 쌓여
보여지는 것 넘어 스토리텔링으로
상실을 치유하지 못한채 큰 어른들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며 정화 경험
강철규 ‘관통’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어둠이 깔린 숲 속, 한 소년이 나무들과 함께 호수에 발을 담근 채 서 있다. 소년은 물에 비쳐 형태가 흐릿한 자신을 내려다본다. 강철규의 대형 회화 작품 ‘관통’ 하단,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 위, 두 번째 주인공은 울창한 숲 속에 있다. 주변의 나무는 불에 타고 거침없이 베어지기도 한다. 늑대가 어둠 속에서 이를 훔쳐본다. 또 다른 늑대는 벌목공을 향해 짖어댄다. 작아진 호수에서 꼼짝 못하는 소년은 두려운 듯 얼굴을 가린다.

눈발이 강한 바람을 타고 몰아치는 한겨울. 공포와 두려움, 분노와 무력감의 숲 속에서 떨던 소년은 조금 더 커졌다. 여전히 작은 호수에 잠겨 있으나 털썩 주저앉은 모습이다. 받아들인 것일까 포기한 것일까. 떠난 사람을 뒤쫓아 보기도 했지만, 그저 조그만 천막에서 불을 쬐는 것이 겨울 숲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얼마 남지 않은 앙상한 나무가 베이고 쓰러진다.

작품 맨 위, 네 번째 아이는 끝내 맑아진 하늘 아래 있다. 작은 아이가 나무를 심으면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얼굴을 가린 채 아이를 돕는다. 푸른 하늘 아래 새 나무를 심는 법을 이제는 알기에, 늑대는 으르렁 짖는 대신 운다. 또 다른 늑대들은 베어진 나뭇가지 더미 주변에서 포근한 자리를 찾는 듯 유유히 움직인다.

작품 ‘관통’은 단지 보여지지 않는다. 읽힌다. 늑대는 작가의 분노하는 자아, 숲은 자신을 보호하는 움직임이자 부작용처럼 나타난 심리적 방어기제다. 벌목은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 외부의 공격이자, 스스로 해낸 극복일 수도 있다. 네 개 층위는 각각 세상에 태어남과 무의식, 유년층, 청년층의 과거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 그 위에 현재의 내가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김두진 설치전경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독일 심리치료사 다미 샤르프의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를 읽었다고 했다. 어릴 적 결핍이 지금까지 관통한다는 의미에서 작품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작가는 가정 내 폭력, 맞벌이 등으로 돌봄의 부재가 당연시됐던 어린 시절, 청년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고 그림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두 차례 소설을 독립출판하기도 했던 작가는 “원고를 쓰면서 작품에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경향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전면에 드러나기보다는 곳곳에 숨겨 있다. 그림 앞에서 화가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이 독해는 더는 작가와 나의 대화가 아니게 된다. 관람자인 나 자신과의 대화다. 지금의 나를 만든 사건과 상처, 감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관람객은 정화를 경험한다.
신미경 설치전경
칼이나 방패가 들린 어린이 모습이나 늑대가 돼 어른을 무는 모습이 담긴 또 다른 작품 ‘분노’에선,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무력을 쥐어 봄으로써 내면을 치유하려는 현재의 작가가 보인다. 희미한 랜턴 불빛 한 줄기에 의지해 어두운 숲 속을 헤매는 모습이 인상적인 ‘철야’는 불면증을 가진 모든 이들이 보는 내면의 밤 풍경이다.

작품 속 은유, 성찰, 우아한 표현의 성숙함에 비해 작가의 나이를 떠올려보면 놀랍다. 그는 1990년생. 이어 실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대전시 서구에 위치한 대전시립미술관의 주제 기획전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지금 가장 절실한 화두를 던진다.
정영주 설치전경
전시는 인간이 소유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나 실은 삶이 상실의 연속이라 말한다. 상실의 대상은 가족이나 친구, 나 자신일 수 있다. 일자리나 보금자리일 수도 있다. 꿈이나 추억을 잃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일 수도 있다. 조직에선 원칙이나 정의일 수도, 관계 속에선 무너진 믿음일 수도 있다. 사회를 인간답게 했던 수치심이나 양심, 예의나 배려를 잃을 수도 있다.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중요한 것일 수도,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상실이 삶의 본질일 수 있기에, 전시는 상실을 마주하고 제대로 애도하는 방법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표현하는 상실을 적극적으로 애도하는 행위로서 예술행위를 펼친다. 상실로 인한 우울감을 예술로 승화한다.
강철규는 성장과정에서 겪은 상실을 애도하는 붓질을 했고, 서민정은 자신의 반려 새의 죽음을 애도하는 도자를 구워 작품 ‘남겨진 것들’을 선보인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없어지는 경험을 소재로 상실을 말하며 애도하는 백요섭은 재개발 구역의 흔적을 채취해 오브제로 내놓아 ‘상실된 장소’를 선보인다. ‘사라지는 고향’ 연작의 정영주는 종이를 구겼다 펴고 잘라 캔버스 위에 붙여 나가며 풍경의 상실을 애도한다.
백요섭 설치전경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트라우마를 내면의 창고 속에 쌓아오기만 했다. 전쟁, 생이별, 고속성장을 위해 묵인된 야만, 대의를 위해 강요된 침묵. 그 속에서 극기(克己)와 애이불비(哀而不悲)만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어른아이’들의 시대를 산다. 상실을 치유하지 못한 채 커버린 어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트라우마적 상황이 재연될 때마다 생채기가 생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반응한다. 상실에 충분히 슬퍼하고 받아들이고 떠나보내기보다는 즉자적으로 분노한다.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들은 내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신의학과 예술을 연계한 이번 전시는 시대정신을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팬데믹으로 잃은 것이 많은 이때 더욱 도드라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내면 들여다보기에 더욱 노력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이라 믿게 된다. 강철규의 경로처럼, 내 안의 어른아이를 마주하고 돌보는 개인, 내 안의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는 개인이 타인을 구하게 되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그 상호작용이야말로 세상을 구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다음달 9일까지.

대전=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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