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냉전의 한복판에 선 평범한 사업가

조성민 2021. 4.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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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감히 네가(How dare you)."

영국 상무부 직원으로 알고 있던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이 스파이 임무를 요구받은 주인공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는다.

윈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만, 도노번은 그가 반드시 다시 연락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평범한 사업가로 살아오던 윈은 얼떨결에 이데올로기 전쟁 한복판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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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스파이' 개봉
“어떻게 감히 네가(How dare you)….”

영국 상무부 직원으로 알고 있던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이 스파이 임무를 요구받은 주인공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움켜쥔 손은 테이블 위에서 부르르 떨고 있다. 에밀리 도노번(레이철 브로스너핸) 미국 CIA(중앙정보국) 요원이 만약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핵전쟁이 벌어지면 가족의 안전은 물론이고 생사를 확인할 시간조차 부족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윈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만, 도노번은 그가 반드시 다시 연락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1960년대 초 세계는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대립이 극에 달했고, 1962년 소련은 쿠바에 미국을 겨냥하는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계획을 세운다.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고 핵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감염병처럼 퍼졌다. 당시 미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회의를 끝내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노을이 드리운 가을 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음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다 죽을 것이라는 예감으로 공포에 휩싸였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그때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냉전의 절정이던 이 시기를 다뤘다. 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남편 그리고 평범한 사업가로 살아오던 윈은 얼떨결에 이데올로기 전쟁 한복판에 선다. 그의 역할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돈에 미친 자본주의자를 연기하는 것이다.

국내 개봉 제목은 ‘더스파이’지만 원제는 ‘The Courier’(운반책)이다. 윈은 첩보 계획의 일부이나 그 내용은 알지 못한다. 모스크바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주변 모두가 그를 감시하고 한순간의 방심은 목숨을 앗아간다.

윈의 상대인 소련 군사정보국 올레크 펜콥스키(메라브 니니제) 대령은 적국의 아마추어 첩보요원인 그에게 스파이 지침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친다. 위장을 위해 발레를 함께 보고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한다. 늘 마음속에서 딸이 살아갈 미래를 그리는 그는 조국을 배신하고 인류를 택한 위대한 스파이다.

이들의 은밀하고 위험한 관계는 이윽고 소련 정보기관 KGB(국가보안위원회)의 눈에 띄게 되고 CIA와 MI6(영국 해외정보국)는 작전 중단을 지시한다. 망명을 바랐던 올레크 대령은 결정적인 기밀을 가진 채 모스크바에 고립된 상황. KGB가 언제 그를 덮칠지 모를 일이다.

윈은 그를 구하기 위한 작전을 자청한다. 사람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한 요원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용기였다. 운반책에 불과했던 그가 한 명의 스파이가 되어 다시 소용돌이에 뛰어드는 순간, 역사는 크게 바뀌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그려냈다. 스파이 영화에 버릇처럼 등장하는 총질이나 격투 장면도 없다. 은밀 기동을 업으로 삼는 스파이들이 실제로는 충돌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물과 이야기, 인간성에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믿고 보는 배우’ 컴버배치가 열연을 펼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 믿고 볼 만하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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