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직자 부동산 투기 진단과 처방 / 이세정

한겨레 2021. 4. 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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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세정 l 전 경기도 복지여성실장

최근 엘에이치(LH) 직원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며 공공주택 사업지 또는 인근 토지를 사들인 사건은 국민적 공분은 물론 공공기관의 권위와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공정성과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대통령 의지의 진정성과 실행력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국민은 공직 사회의 땅 투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필자와 같이 공직생활을 함께한 공무원 몇명도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첫째로 리더십의 부재를 제기할 만하다. 주택 개발사업에 종사하는 엘에이치 직원과 지자체 직원들은 부정과 비리에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이들 기관의 장은 공익 우선의 올곧은 원칙을 세워 소속원들과 공유하며 엄격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장 최근 엘에이치 사장을 역임한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하는 모습을 보며 책임 의식을 알 만했다.

둘째는, 기관 내외부의 행정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엘에이치에는 엄연히 사장 직속의 감사위원회와 감사실이 존재한다.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심지어 직원의 내부 제보까지 묵살했다고 하니 엄연한 직무유기다. 제1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139명의 공무원이 구속된 전례가 있는 등 공공주택 개발사업에 공무원의 투기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음에도 심도 있는 감찰 활동을 하지 못한 외부 감독기관, 예컨대 국토교통부, 감사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의원은 갑의 위계를 이용하여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재산을 늘렸다는 것이 공공연한 국민 인식이다. 과거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다수 의원들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양심에 걸려서 아니면 더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 때문에 2013년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이해충돌방지규정 입법을 외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일선 직원들은 공직 윤리가 심각하게 결핍돼 있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차명거래, 미등기 전매, 묘목 심기, 지분 쪼개기 등의 투기 수법을 실행하려면 2인 이상의 담합과 시간이 필요한데, 결국 주거 약자들을 돕기 위한 본연의 직무 대신 사익 챙기기에 바빴단 얘기가 된다. 특히 “우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냐”며 저항하는 태도는 부동산 투기가 기관의 문화로 정착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할 정도다. 공무원은 국민이 부여한 수탁자로서 정책을 수립하고 재정의 집행 등 시민들보다 우월한 권력을 소유하고 개발 정보를 생산하고 있기에 상당한 유혹에 직면할 수 있다. 냉철한 절제와 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이유다. 필자도 업무 수행 과정에서 유익한 정보를 저절로 알게 되거나, 다른 공직자에게 직간접으로 특정 지역의 토지 매수를 권유받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공직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사익을 배제하고 공익적인 일에 전념하는 대가로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신분을 보장받고 안정된 노후가 가능하게 연금을 받는 것이다. 주택공급 사업을 추진하는 공직자들은 자신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물질과 부로써 축적한 화폐나 주식, 토지 등의 자산이 아닌 정신적인 가치, 의식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언급했다. 3기 신도시의 공공주도 공급 정책은 이미 발표되어 계획 자체의 취소나 공공주도 방식의 포기는 어려울 것이다. 3기 신도시에 청약 의사를 밝힌 사람이 38만명을 넘었다는 정부 발표도 있다. 엘에이치와 관련 공공기관 직원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마련하려는 주거 약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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