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걸린 이소선 여사의 '계엄 위반 사건' 재심 청구

이수민 2021. 4. 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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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여사 생전 모습(사진 제공 : 전태일재단)


■ 검찰, 이소선 여사 등 5명에 대해 재심 청구하기로

우리나라에는 이미 확정된 유죄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특별 소송 절차가 있습니다. '재심 절차'인데요. 기존에 유죄가 난 확정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드러난 경우, 피고인 등이 재심을 청구하도록 보장하는 일종의 구제 방법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에서 재심 사유가 발생하면 당사자, 유족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故) 이소선 여사 등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형사 처벌을 받은 민주화 운동가 5명이 이 재심 절차를 통해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 형사5부가 지난달 12일에 이어 어제(21일), 이 5명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인데요. 이들의 행위가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41년 만에 명예회복하나?

올해는 이소선 여사의 서거 10주기입니다.

이소선 여사는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는데요.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약 41년간 노동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이번에 검사가 재심을 청구한 건은 이 여사가 1980년 12월 6일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은 판결입니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4일 '시국 성토' 농성에 참여해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또 같은 달 9일 열린 집회에서는 '노동3권을 보장하라, 민정을 이양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를 포고령 위반 행위로 간주한 군사정권은 이 여사를 수배해 같은 해 10월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 12월 계엄 보통군법회의는 이 여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 이숙희 "당연히 할 말을 했는데, 죄로 만들었던 세상이었죠"

1972년부터 청계피복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여사와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이숙희 전태일재단 교육위원장은 이번 재심 청구에 대해 "이제라도 (재심 청구를)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은 있지만, 그렇게 기쁠 수만은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소선 어머니에게 쓰여있는 죄목들은 사실 정치적으로 악용된 것"이라면서 "(이소선 여사는) 당연히 할 말을 한 것뿐인데, 그걸 죄로 만들었던 세상이었다는 게 조금 화가 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다 했어야 되는 것들을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며 "아직도 노동문제는 소외돼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착잡한 마음은 남아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는 전태일재단 역시 이번 검찰의 재심 청구 결정을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재단은 오늘(22일) 입장문을 통해 "이소선 어머니의 계엄포고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재심청구는 당연하다"면서 "이번 재심청구가 이소선 어머니 한 분에 그치지 않고 개발독재 과정에서 피와 눈물을 흘린 모든 노동자·학생·시민의 명예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검찰과 사회에 촉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당시 대학생 2명도 포함...유족 "잊지 않고 챙겨줘 고맙다"

이소선 여사 외에도 검찰이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대상은 4명 더 있습니다.

그중에는 숙명여대에 재학 중이던 1980년 6월 11일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었다가 그다음 해인 1981년 1월 24일 계엄 보통회의에서 각각 선고유예와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고(故) 김 모 씨와 양 모 씨도 포함돼 있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는데요. 양 씨는 "친구 김 씨가 판결문 기재 내용 이상으로 민주화를 위해 적극 기여한 친구"라며 "1986년쯤 사망했지만, 꼭 그 친구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면 좋겠다."라는 의사를 검찰에 밝혔다고 합니다.

수기로 작성된 고 김 모 씨의 개인별 주민등록표


하지만 검찰은 이미 고인이 된 김 씨의 유죄 판결 선고 기록 외에는 전산상으로 김 씨와 가족의 신상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담당 주민센터에 사망자 관련 자료를 확인하는 방법을 문의하고서야, 수기로 작성된 김 씨의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김 씨의 오빠는 "우리 가족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을 가슴에 묻은 채 서로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지내왔다"며 "잊지 않고 챙겨주어 고맙다."라고 재심 청구에 동의했습니다.

이 밖에도, 검찰은 다른 생존자 2명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1980년 6월 27일 '학생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유인물을 검열 없이 출판한 혐의로 같은 해 11월 계엄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장기 8월·단기 6월을 선고받은 이 모 씨와 1980년 5월 1일 정부를 비방하는 시위를 했다는 혐의로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조 모 씨입니다.

검찰은 이번 재심 청구를 통해 이 5명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되진 않았더라도, 당사자들이 직접 재심 청구한 사안들에 대해 세심하게 살핀 뒤 무죄 선고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무죄 구형을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수민 기자 (waterm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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