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은 칼싸움 아닌 땅따먹기..뻔뻔함도 밀려선 안돼"

이용건 2021. 4. 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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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사브르 대표팀 맏형
25년 검잡고 그랜드슬램 달성
에이스 부담 털고 정신적 지주로
"후배들 너무 잘해 팀워크 고조
사상 첫 올림픽 3연속 메달
도쿄올림픽서 해낼겁니다"

◆ 나는 철인이다 ⑦ 대한민국 펜싱 레전드 김정환 ◆

세계 펜싱 종주국은 프랑스다. 2016년 프랑스는 어느덧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한국 사브르팀을 배우기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해가며 한국팀을 초청했다. 한국 남자 사브르는 세계 정상에 선 뒤로도 더 강해지고 더 굳세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배경에는 한국 펜싱 최초의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 금메달) 달성자이자 대표팀의 맏형 김정환(38·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있다. 이제 그의 마지막 칼끝은 국가대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올림픽 3연속 메달을 향해 도쿄올림픽 시상대를 겨누고 있다.

―25년째 검을 잡고 있다.

▷다니던 중학교에 '펜싱부'가 있었고 코치님은 키에 비해 긴 내 팔(별명 가제트)을 보고 펜싱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셨어요. 부모님은 외동아들이 펜싱을 계속할 수 있도록 프랑스 유학까지 생각하셨죠. 우리나라에선 펜싱이란 종목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의 일이에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슬럼프 등을 마주했을 때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를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의 기본이 노력이라면 이를 꽃피우게 해줄 운도 중요해요. 전 '참 운이 좋았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펜싱, 그중에서도 왜 사브르인가.

▷예전엔 사브르 쪽 선배들이 플뢰레나 에페 쪽이랑은 답답해서 술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웃음). 사브르는 공격 면(상체 모든 부위)이 넓고 베기도 허용됩니다. 먼저 성공시킨 사람이 점수를 가져가니 승부가 빠르게 나죠. 육상으로 따지면 사브르는 단거리입니다. 답답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라 딱 맞았죠. 사브르만의 매력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서로 공격했다고 소리 지르고 보는 겁니다. 심판도 사람이라 선수가 기세등등하면 혼란이 오죠. 뻔뻔함에서도 절대 해외 선수들에 밀리면 안됩니다. 사브르도 이번 올림픽부턴 동시타 인정 시간(0.17초)이 늘어나서 이제 '능청'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내 강점이기도 하고요.

―펜싱선수로 꽃피운 게 30대 때인데.

▷대표가 되기 전인 2005년에 국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데 대회 기간에 처방받은 감기약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됐어요. 다행히 처방전이 인정돼 자격정지 기간이 4년에서 1년6개월로 줄었습니다. 다시 복귀해 대표로 선발됐고 또 금메달을 땄죠. 복귀하자마자 딴 그 메달이 나를 자만에 빠지게 했어요. 이후 6년 가까이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스포츠 선수에겐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지금은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모든 게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후배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제일 강조합니다.

―민첩함이 생명인데, 나이 영향은.

▷펜싱을 팔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체가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칼싸움이 아니라 '발로 하는 땅따먹기'인 거죠. 풋워크가 운동의 기본이 되고 하체 훈련 비중이 높습니다. 물론 민첩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확실히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적으로 한계가 와요. 다만 경험은 펜싱에서도 중요한 무기죠. 수만 번을 찌르고 베고 막다 보면 일정한 패턴을 볼 수 있고 경험을 바탕으로 그 길을 파악하고 막을 수 있습니다.

―올림픽 메달 자신 있나.

▷다시 한번 나는 선수로서 운이 참 좋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우리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정상급이죠. 후배들이 잘해서 굳이 내가 에이스일 필요가 없어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팀 내에서 역할도 달라졌어요. 기량 면에서 후배들이 확실하기 때문에 나는 후배들이 낯선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만 하면 됩니다. 현재 팀워크는 가장 이상적이죠. 개인적으론 작년에 올림픽이 열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한 살 어렸고 그때 우리 팀이 세계무대를 휩쓸면서 분위기가 최고조일 때였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좋은 흐름은 이어가고 있지만요.

―언제까지 선수로 뛰나.

▷2018년 아시안게임 후 이룰 건 다 이뤘단 생각에 은퇴를 결정했죠. 쉬는 동안 늘 공허함이 남아 있었어요. 남은 인생은 긴데 아직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때 1년이라도 더 뛰는 게 후회가 남지 않겠다는 생각에 복귀했습니다. 도쿄올림픽을 최종 목표로 잡았는데 1년 밀리다 보니 내년엔 또 아시안게임이 있네요(웃음). 최우선 목표는 아직 누구도 해보지 못한 올림픽 3연속 메달입니다.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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