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 "곧 허가" 자가검사키트..전문가 "한국엔 안 맞아"

서혜미 2021. 4. 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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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조건부 허가 앞둔 자가검사키트 효용성 논란
검사때 양성률 10% 넘으면 써볼만..유행도 낮으면 혼란만
자가검사키트 시연. 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곧 허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면서, 국내에서도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스스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섣부른 도입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1일 “자가검사키트와 관련된 부분은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자가검사키트는 일반적으로 ‘개인용 신속항원검사키트’를 뜻한다. 신속항원검사는 검사 결과가 30분 이내에 나오지만 정확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신속항원키트가 전문가용으로만 허가돼 개인이 스스로 검체를 채취해 코로나19 양성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뒤 자가검사키트 도입을 뼈대로 한 ‘서울형 상생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다. 방역당국은 노래연습장 등 유흥시설에 들어갈 때 키트를 사용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으나, 요양병원·학교·콜센터, 실내체육시설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도입을 추진했다. 이에 식약처는 자가검사키트 개발과 동시에, 국내에서 전문가용으로 허가받은 제품 가운데 국외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제품에 대해 조건부로 사용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가검사키트 도입 주장의 층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요양병원이나 어린이집, 대규모 사업장처럼 반복적인 밀접접촉이 일어나는 집단에 주기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감염 확산이 대규모로 번지기 전에 확진자를 찾아내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선별검사소에 가야만 받을 수 있는 유전자 증폭 검사(RT-PCR) 말고도, 자가검사키트라는 보조 수단까지 동원한 ‘검사 다각화’로 지역사회에 퍼져 있는 숨은 감염자를 찾자는 것이다. 오 시장은 자영업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가검사키트를 수단으로 사전에 감염자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영업제한을 완화할 여지를 만들자는 취지다. 적극적인 검사 확대로 감염자를 찾아내자는 목적 의식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슷한 측면이 있다.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위해 식약처는 지난 16일 관련 고시를 개정하기도 했다. 식약처는 ‘이미 허가·인증·신고한 체외진단의료기기 중 사용 목적, 사용 방법 등을 변경한 체외진단의료기기’는 ‘감염병 대유행에 따라 공급이 부족해 신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자료제출을 시판 뒤로 늦출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개인용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민감도(양성 환자를 양성으로 판정할 확률) 90% 이상, 특이도(음성 환자를 음성으로 판정할 확률) 99% 이상’을 충족해야 하는데, 당장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시판 뒤 자료제출을 조건으로 허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전문가용은 민감도 80% 이상, 특이도 95% 이상을 충족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코로나19 상황과 다른 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이혁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진단검사의학과)는 “유럽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유전자 증폭 검사를 원활하게 할 수 없을 경우나 검사 때 양성 비율이 10% 이상으로 매우 높을 경우에 자가검사키트 사용을 권고한다”며 “우리처럼 유병률(인구 대비 환자 비율)이 낮을 경우엔 위양성(가짜 양성)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반면 유병률이 높은 나라는 워낙 확진자가 많기 때문에 위양성(가짜 양성)으로 인한 피해를 우리만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당국은 학교에 자가검사키트를 사용하게 되면, 가짜 양성 사례로 등교수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창호 대구가톨릭대병원 교수(진단검사의학과)도 “자가검사키트를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응급수술을 받아야 해서 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를 기다릴 수 없는 등 위기 상황이나, 유병률이 높은 상황, 혹은 지속적인 추적과 관찰이 가능한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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