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우선·빅테크 협업·조직 혁신..금융업 '게임의 룰' 바뀌었다"

이태규 기자 2021. 4. 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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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금융전략포럼] 석혜정 딜로이트 리드파트너 주제강연
빅테크·핀테크가 금융경계 허물어
개인 맞춤형 서비스 갈수록 중요
시중은행, 축적된 전문성 활용해
플랫폼노동자 등 놓친 고객 파악
수익성 있다면 빅테크와 협업을
석혜정 딜로이트 컨설팅 코리아 리드파트너가 22일 제20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금융, 경계를 뛰어넘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그동안 금융은 전통 금융사가 상품의 제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독점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 고객은 천편일률적인 금융 상품이 아닌 맞춤형 서비스를 원하고 빅테크(네이버·카카오 등), 핀테크는 이 부분을 파고들며 금융업 가치 사슬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석혜정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리드파트너는 “금융업의 3대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며 “전통 금융사는 고객을 최우선에 둬야 하고 정교한 자기분석을 통해 빅·핀테크와 협업할 것은 해야 하며 변화에 유연한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파트너는 22일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금융, 경계를 뛰어넘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금융업 가치 사슬이 해체되고 있다”고 짚었다. 석 파트너는 “미국의 전문 투자자문사 뱅가드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은행이 예금을 받는 것처럼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며 “우리도 전자금융법이 개정되면 네이버 등 빅테크가 은행만 갖고 있던 사실상의 수신 기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이 금융회사를 이용할 때의 ‘경험’을 중시하고 있는 것도 게임의 법칙이 바뀌는 대표 사례다. 석 파트너는 “미국에서 순수 고객 추천지수(NPS)를 조사한 결과 아마존은 47점이었지만 지역 은행은 31점이었고 전국 은행은 18점에 그쳤다”며 “아마존은 고객을 기민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비교적 높은 점수가 나왔지만 은행은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은행 고객의 89%가 은행과 새롭게 거래할 때 불만족했고 이 중 13%의 고객은 이탈했다는 조사도 있다”며 “결국 고객 경험에 신경을 쓰는 조직이 우세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카드사와 유통사가 손을 잡고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를 출시하는 등 금융사와 이종 산업 간 합종연횡이 심화하는 것도 금융업이 변화하는 예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에 전통 금융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석 파트너는 무엇보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업이 그동안의 판매자 중심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금융사는 고객의 ‘라이프 스테이지(생애 단계)’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금융사는 고객이 대학에 입학할 때나 취직했을 때, 은퇴했을 때에 맞춘 금융 상품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개인별 라이프 스타일이 다변화하고 있으므로 집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투자 상품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식으로 금융 서비스도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석 파트너는 “고객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해 놓쳤던 소상공인·자영업자나 긱 이코노미(노동을 단시간 임시로 하는 경제구조) 노동자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은행이 기존 신용 평가 모델에 갇혀 소상공인이나 플랫폼 노동자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공부해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경우 금융사에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빅·핀테크가 기민하게 움직이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전통 금융사도 금융 중개 기능, 리스크 관리 능력, 규제에 대한 이해 등 다른 기업이 하루아침에 따라올 수 없는 전문성이 있다”며 “고객 최우선 원칙을 우선한다면 전통 금융사의 존재 가치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빅·핀테크와의 협업에도 정교한 자기분석을 바탕으로 열린 자세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KB금융·신한지주 등은 네이버·카카오 등과의 협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이들 플랫폼에 종속돼 금융 상품만 제조하는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석 파트너는 “금융사가 냉철하게 자사 현황을 진단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사가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영역 중심으로 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례로 영국의 스타트업 ‘보우트바이매니(BBM)’는 특정한 수요를 갖고 있는 개인을 그룹화해 보험사의 맞춤형 보험 상품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개인 입장에서는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가입을 할 수 있고 보험사도 새로운 보험상품을 출시해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지난 2012년에 사업을 시작한 BBM에는 4월 현재 60만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석 파트너는 금융사들이 내·외부 협업을 할 수 있게 운영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또 고객을 정확히 이해하고 협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므로 지금까지 당연하게 봐왔던 비용을 다시 짚어보고 성장 분야에 돈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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