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 선구자' 박현기의 숨소리를 들어라

박지현 2021. 4. 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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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 내달 30일까지 '아임 낫 어 스톤'展
박현기 / 갤러리 현대 제공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는 누구인가. 가장 먼저 백남준을 떠올리겠지만 솔직히 그의 국적은 미국이다. 백남준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오히려 국내 미술계에서 비디오 아트의 효시로 불리는 인물은 박현기(1942~2000)다. 1974년 대구 미국문화원 도서관에서 백남준의 '지구의 축'이라는 작품을 보고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박현기는 1978년 일본으로 건너가 비디오 아트를 위한 기술을 익히고 국내 미술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7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직접 브라운관을 들고 '물 기울기' 퍼포먼스를 벌인 그는 이듬해인 1980년 프랑스 파리 비엔날레에 초청받아 현지에서 구한 돌과 브라운관으로 'TV 돌탑'를 선보였다. 당대의 첨단기술에 가장 열광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쳐낸 '얼리 어답터' 작가 박현기는 지난 2000년 위암으로 우리 곁을 조금 일찍 떠났지만 21년이 지난 지금 그를 다시 돌아보는 전시 '아임 낫 어 스톤(I'm Not a Stone)'을 통해 미래 관객을 다시 만나고 있다.

■'TV돌탑' 이전 자연을 연구한 박현기의 숨소리

박현기 'Untitled'(1978년, 2015년 재제작) / 갤러리 현대 제공
전시의 시작점은 관객에 따라 다르겠지만 큐레이터의 의도를 살피자면 지하 1층부터다. 갤러리 입구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을 내려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그의 작품은 돌과 레진으로 쌓은 세 개의 탑이다. 요즘도 산길에서 등산객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무더기 탑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수백년의 시간 이 땅의 옛 마을 어귀에서 간절한 소원을 담아 올리던 돌탑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실제 돌과 레진으로 만든 핑크빛, 노란빛 반투명 인공돌을 교차해 쌓은 이 탑은 전시장 조명에 반짝이면서 자연과 인공, 물질과 비물질,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작가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박현기는 그의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사용됐던 돌에 대해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라고 칭하며 선조들의 미의식을 간직한 정신적 산물이자, 세상을 비추는 카메라, 영상 이미지가 상영되는 스크린으로 활용했다. 박현기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마주한 고갯마루의 성황당 돌무더기 전경을 잊지 못한다"며 "전쟁 와중에 고갯길을 메운 피난 행렬 앞쪽에서부터 돌을 주우라는 신호가 뒤로 전달됐고 이윽고 크고 작은 돌무더기를 향하여 던지며 지나고 있었다. 돌무더기는 신들의 무덤 같기도 하고 그들의 거처 같기도 한 상상을 초월한 묘한 장소로 기억난다"고 밝힌 바 있다.

박현기 'Untitled' (1983년, 2015년 재제작) / 갤러리 현대 제공
무생물이지만 인간의 소원을 가득 담아냈던 돌들의 탑을 너머 박현기는 돌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마치 강가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두번째 작품은 공간 가운데 마이크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널린 돌들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멈춰있는 돌이지만 마치 살아서 그 자리에 온 듯, 때로는 한쪽에 모여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듯하다. 바닥에 퍼져있는 돌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다 보면 이런 저런 소리들이 귓가에 들리는데 가운데 마이크에서 담긴 전시장을 오가는 소리와 함께 작가가 1983년 겨울 대구의 작업실에서 화랑을 향해 걷던 중 채집한 소리들이 함께 울리는 것이다. 예민한 이들이라면 40여년 전 작가의 숨소리 또한 작품 속에서 들을 수 있다.
박현기 'Untitled' (1986년, 2021년 재제작) / 갤러리 현대 제공
지하 1층에서 'TV돌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박현기의 돌에 대한 실험과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면 1층에서는 1980년대 중반 돌 외에 다양한 재료에 대한 실험을 거듭했던 그의 다양한 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 앞을 가로막고 있는 2m 높이의 미송 나무 벽. 어느 쪽으로 오갈지 망설이다 한 방향을 정해 몸을 돌리면 마치 미로와 마주하는 것 같다. 관람객의 시점과 위치에 따라 작품과 공간에 대한 지각 실험을 했던 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키가 크고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시장보다 반층 높은 로비에서 이 작품의 메시지를 볼 수도 있을텐데, 일종의 스포일러를 밝히자면 이 구조물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 알파벳으로 A, R, T의 모양을 하고 있다.

■'TV돌탑'과 '만다라'로 만나는 비디오 아트의 정수

박현기 'Untitled' (1988년, 2021년 재제작) / 갤러리 현대 제공
지하와 1층을 거쳐 마지막 2층에 도달하면 드디어 세간에 널리 알려진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의 주요작을 만날 수 있다. 그의 'TV돌탑' 시리즈 중 가장 큰 작품으로 1988년 일본 세이부 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됐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두 개의 두툼한 주춧돌 위에 네 개의 거대한 TV 모니터가 쌓여 있는데 화면 속에 돌의 영상이 이어지면서 3m 규모의 육중한 돌탑의 위용을 보인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모니터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형 TV가 보급되던 시기에 발표됐는데 실제 돌과 허구의 돌이 쌓여 만들어낸 어떠한 욕망도 시간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허상이 됨을 시사한다.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 (1997~1998년) / 갤러리 현대 제공
TV라는 매체를 넘어 컴퓨터그래픽의 발전과 영상 프로젝터 기술이 고도화되던 1990년대 박현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티벳의 절에서 하늘을 향해 꽃의 향을 올려 보내던 헌화대 위에 프로젝터 영상을 쏘아 종교적인 성스러움과 가장 세속적인 포르노그래피 영상을 교차해 만든 그의 말년 작품이자 그가 창조한 비디오 아트의 정수로 평가받는 '만다라'가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반긴다. 어두운 전시장엔 천장에 고정된 프로젝터에서 내려오는 붉은 불빛만 보이고 영상을 보려면 의례용 헌화대에 가까이 다가가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관람객은 비밀스러운 장면의 목격자로 초대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도상이 겹쳐져 무한 반복 재생되는 가운데 마침내 보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구체적인 형상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심장 박동처럼 속도감 있는 사운드와 도상의 잔상만 남는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서울 삼청로 갤러리 현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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