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뒤 아이폰 나올 줄이야".. 최신원 회장 법정 세운 아이폰 나비효과
2200억 횡령·배임 재판 받는 최신원 회장 첫 공판기일 열려
SK텔레시스 유상증자 참여 과정 놓고 檢·變 치열하게 맞서
"피고인 최신원 회장은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었고 피처폰인 'W폰'을 2009년 출시했다. 초기 반응은 성공적이었지만 두달 뒤에 KT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휴대폰 시장의 환경이 급변했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전자의 갤럭시에 맞서기 힘들었고, 결국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됐다. 아이폰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외생적 변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220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에 대한 첫 재판이 22일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최 회장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과 최 회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과 이에 대한 반박을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밝혔다. 검찰은 최 회장이 자신이 실질 지배하던 6개 회사에서 2235억원을 횡령·배임했다며 공소사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반면 변호인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에 대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배임의 고의가 없었고 실질적인 손해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과 변호인이 맞선 부분은 여러 공소사실 중에서도 SK텔레시스에 대한 SKC 유상증자 참여 부분이었다. SK텔레시스가 부도위기에 처하자 모회사인 SKC는 세차례에 걸쳐 SK텔레시스 유상증자에 참여해 936억원을 지원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SKC 이사회가 SK텔레시스에 대한 회계자료 공개와 경영진단 실시를 요구했지만, 최 회장의 지시로 이를 거부한 채 유상증자를 진행했다며 배임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검찰은 최 회장이 SK텔레시스 자금 164억원을 회계처리 없이 인출해 SK텔레시스에 대한 개인 유상증자 대금으로 쓴 것이 횡령이라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의 변호인은 최 회장이 SK텔레시스 자금을 인출해 유상증자 대금으로 쓴 것은 맞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판단이었고 3개월 안에 차용한 자금을 모두 갚았기 때문에 횡령이 아니라고 맞섰다. SK텔레시스 유상증자 과정에서 최 회장이 횡령·배임을 저질렀는지가 이번 재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최 회장의 변호인이 SK텔레시스가 부도 위기에 몰린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최 회장의 변호를 맡은 율촌의 이재근 변호사는 최 회장의 휴대폰에 대한 애정을 언급했다.
문제가 된 SK텔레시스는 1997년 스마트정보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2001년 SKC 자회사로 편입됐다. 원래는 통신 중계기를 만드는 회사로 2000년대 초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러다 최 회장이 휴대폰 제조업을 SK텔레시스의 신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서면서 먹구름이 끼었다. SK그룹은 2005년 SK텔레텍을 팬택에 매각하면서 휴대폰 제조업에서 손을 뗐는데, 최 회장이 2007년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다시 SK의 브랜드를 단 휴대폰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의 변호인은 "최 회장은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참여할 정도로 IT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스카이폰 판매로 큰 성공을 거둔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신사업으로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의 휴대폰 사랑은 2009년 'W폰'으로 결실을 맺었다. '비폰' '조인성폰' 등으로 화제를 끌며 'W폰'은 초기에 시장에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불과 두달 뒤에 KT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최 회장의 변호인은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중심으로 휴대폰 시장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었고, SK텔레시스도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아이폰이나 갤럭시폰에 앞서기 힘들고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며 "아이폰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외생적 변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휴대폰 제조업이 실패로 끝나면서 SK텔레시스는 크게 휘청했고,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이 과정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회사인 SKC가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검찰은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의 횡령·배임이 있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기업 사건을 주로 다루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 회장의 변호인이 횡령이나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을 위해 SK텔레시스의 휴대폰 사업 진출과 철수 과정을 길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리적으로는 먹혀들 수 있을지 몰라도 최 회장의 사업적인 식견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같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구속기간 만료가 9월 4일인 점을 고려해 매주 목요일마다 공판을 열고 증인을 부르는 등 재판 진행을 속도감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도 오후에는 SK텔레시스 임직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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