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랑데부] '진짜' 별의 순간

한겨레 2021. 4. 22. 14: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심채경의 랑데부]
별을 보는 것은 자연을 마주하는 일이다. 맑거나 흐리거나 추운 날씨도, 고라니의 울음소리나 벌레의 습격도, 간식이 벌써 다 떨어졌다고 입을 삐죽 내미는 아이도 자연 그 자체다.

심채경 ㅣ천문학자

대학교에 입학한 첫해, 새벽에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이라는 소식에 친구들과 함께 유성우를 보러 갔다. 탈탈거리는 낡은 중고차를 타고 서해안으로 향했다. 서해대교에 진입하자 거센 바람에 차가 휘청거렸다. 호기롭게 창문을 열자 바람이 훅 들어와 차 안을 휩쓸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늦은 밤의 세찬 공기와 오렌지색 가로등으로 물든 야경에 넋을 빼앗겼다. 그때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운전석 옆문 팔걸이 공간에 대충 던져 넣은 고속도로 통행료 티켓이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은.

별똥별을 향해 가는 길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첫번째 난관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는 톨게이트였다. 차 안을 이 잡듯이 뒤져도 통행료 티켓은 나오지 않았다. 톨게이트 옆 좁은 공간에 차를 대고 하염없이 뒤적거리는 우리를 보며 계산원이 물었다. “혹시 출발할 때 영수증 같은 건 없어요?” 다행히 출발 전 주유하고 받은 영수증을 콘솔 박스에서 찾아내, 우리는 무사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번째 난관은, 일단 해변으로 오긴 했는데 어디가 별 보기 좋은 곳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휴가철도 아니었는데 가로등과 가게 간판 불빛이 너무 밝았다. 관광지에서 떨어진 외딴곳의 황무지를 찾아갔지만, 경계근무를 서던 군인들에게 쫓겨났다. 아마도 우리 또래였을 그 군인들은 별똥별을 보려고 한다는 우리의 말에 준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해변으로 차를 돌려 상점가의 불빛을 조금이라도 막아줄 작은 벽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저마다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낮은 목소리로 별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 “어?” 하면 고개를 돌려 별똥별의 자취를 뒤따랐다. 삼각대가 없어 시디(CD) 케이스로 급조한 받침대에 카메라를 기대어 놓고 릴리즈로 가만가만 찍었던 사진 속에는 별똥별이 남았고, 나의 머릿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꽤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며칠 전, 모처럼 날씨가 맑아 아이들을 데리고 별을 보러 갔다. 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번잡한 일이다. 마땅한 장소를 물색해야 하고, 그런 곳은 대개 집에서 한참 멀다. 때아닌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하고, 막상 별을 보려는데 구름이 나타나면 허탕이다. 날씨가 맑아야 하고 다음날 출근 시간 걱정도 덜 할 수 있어야 하며, 달은 밝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최고의 조합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날도 한 시간 가까이 달리고 헤매다 야트막한 산골의 어느 폐교에 이르렀는데, 아니나다를까 반쯤은 허탕이었다. 하늘에는 생각보다 별이 많지 않았다. 도시에서 오는 빛 공해는 여전했고, 근처의 큰 호수에서 오는 습기까지 더해 부연 하늘을 보며 북두칠성이나 겨우 찾을 수 있는 정도였다. 돗자리를 깔고 잠시 아이들과 누워 하늘을 보며 깔깔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다. ‘그냥 집에서 스마트티브이로 별똥별 중계방송이나 다시 볼걸 그랬나?’

지난겨울, 가족과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 인터넷으로 별똥별 관측 생중계를 봤다. 거실 불은 끄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전구를 켜니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티브이에서는 광각렌즈를 통해 보여주는 하늘에 때때로 별똥별이 밝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갔고, 인터넷방송 진행자가 “어, 지금!” 하고 외쳐주면 아이들은 이불을 덮고 서로 기대 반쯤 졸고 있다가도 눈을 반짝 떴다.

아이들은 1년 넘게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했다. 원격수업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들었고, 나도 각종 회의에 참석하러 돌아다니는 대신 연구실에서 또 집에서 인터넷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렇게 다들 원격 소통에 익숙해진 덕에, 우리는 겨울밤 거실에서 티브이를 통해 보는 별똥별 쇼에 쉽게 스며들었다.

별을 보는 것은 자연을 마주하는 일이다. 밤하늘이 자연 그 자체임은 말할 것도 없고, 기꺼이 밤하늘을 넓게 열어주는 자연의 장소를 방문하는 일이다. 맑거나 흐리거나 추운 날씨도, 고라니의 울음소리나 벌레의 습격도, 간식이 벌써 다 떨어졌다고 입을 삐죽 내미는 아이도 자연 그 자체다. 끝내주게 별이 잘 보이는 장소에서 생중계로 보여주는 밤하늘은 스마트티브이로 보아도 아름답지만, 그런 걸 보면 볼수록 거대한 자연과 직접, 더 자주 대면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차에 하이패스 단말기를 설치해두었으니까, 고속도로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하늘로, 별로, 우주로 가는 길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