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천하의 몹쓸 짓"..격해지는 중·일 말싸움

김지성 기자 2021. 4. 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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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을 놓고 중국의 공세 수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 최근 스가 일본 총리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미·일 공조를 과시한 데 이어, 미·일 공동 성명에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타이완 문제를 명시하는 등 대중국 견제 기조를 분명히 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중·일 간 감정싸움이 격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중국 "천하의 몹쓸 짓"…중·일 "마셔라" · "하수도" 논쟁


중국의 불편한 심기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매일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하는 정부 부처는 외교부가 유일합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대부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발표되는데, 이 때문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는 세 명의 대변인이 일주일씩 번갈아 가면서 브리핑을 합니다. 4월 21일 브리핑에 나선 왕원빈 대변인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에 대해 "일본은 자신이 응당히 져야 할 국제적 책임을 방기하고, 환경·건강·안전 위험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려 한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과학적이지도 합법적이지도 않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冒天下之大不위(是+韋)"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직역하면 '천하의 몹쓸 짓을 저지르다'는 뜻으로, 완곡하게는 '온 세상이 비난할 짓을 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왕 대변인이 어떤 뉘앙스로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투로 봐서는 전자로 해석할 만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거친 언사는 이번 만이 아니었습니다. 13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그 물(오염수)을 마시더라도 별일 없다"고 말하자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이튿날 "그렇다면 그 물을 마셔보고 다시 얘기하라"고 곧바로 응수했습니다. 나아가 "해양은 일본의 쓰레기통이 아니고, 태평양은 일본의 하수도가 아니다"고도 했습니다. 자오 대변인은 15일에도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오염수가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들이 오염수를 마시고 밥 짓고 빨래를 하거나 농사를 지으라"고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아소 부총리는 16일 "마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럼 태평양이 중국의 하수도냐"고 맞받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음료수 수질 가이드라인의 7분의 1로 희석해 처분할 것"이라며 오염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중국이나 한국의 원전이 방류하고 있는 것보다 낮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당연히 중국이 이를 인정할 리 없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정상적인 원전의 처리수와 후쿠시마 오염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원전의 처리수는 국제적 기준에 따라 수년간 증명된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방사성 폐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선 원자로 파괴 등으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전례 없는 위험 물질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한국 반일 시위 연일 보도…일본 제품 불매 운동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한국에서의 반일 시위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를 오히려 한국 매체보다 더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 반대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공동 입장을 알림으로써 미·일 공조에 맞서려는 의도가 읽혀집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미국과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인들의 반일 시위를 중계하는 중국 CCTV 기자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일본 브랜드 목록을 열거하면서 사지 말자도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란 해시태그 글에는 2만 7천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중국 내 이런 반일 분위기에 대해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케우치 유키오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일본이 타이완 문제를 명시한 것을 놓고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보복 조치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이 사드 보복을 당한 것처럼 일본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촉구 글


중국은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입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은 대중국 수출과 수입 모두 전체 교역량의 20%를 넘습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9일자 사설을 통해 "일본은 타이완 문제에 접근하지 말라. 깊이 관여할수록 대가도 커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2019년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새로운 중·일 관계를 약속하는 등 최근 몇 년간 두 나라 관계는 우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두 나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제 관계에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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