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정책 실패가 청년을 '투기판' 내몬다

기자 2021. 4. 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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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雜코인 투자금이 코스피 초과

암호화폐 거래자 절반이 2030

집값 폭등 ‘이생망’ 인식 결과

고위험 지적도 쇠귀에 경 읽기

청년 위해선 백 마디 걱정보다

희망을 줄 정책 한 개가 더 중요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을 무색하게 하는 광풍이 코인(암호화폐) 시장에 불고 있다. ‘도지’라는 코인의 경우 지난 17일 하루 거래액이 무려 17조 원으로, 코스피시장 하루 평균 거래금액(15조 원)을 가뿐히 넘었다. 비트코인과 달리 도지코인은 채굴이 무한정으로 가능한 알트(대체) 코인이다. 주식으로 치면 비트코인이 삼성전자 주식이라면 도지코인은 상장 폐지 일보 직전의 비우량주에 불과하다.

이 잡(雜)코인 하나에 코스피시장 전체보다 많은 돈이 몰린 것이다. 이달 초만 해도 60원대에 거래되던 도지코인은 최근 540원의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더 심한 예도 있다. 20일 상장된 ‘아로와나’라는 코인은 거래가 시작된 지 불과 30분 만에 가격이 1000배 넘게 치솟았다가 같은 날 가격이 20%가량이나 떨어졌다.

주목할 것은 이처럼 변동성이 큰 코인 시장에 새롭게 대거 참여하고 있는 세대가 20, 30대라는 점이다. 20일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이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거래소에서 올해 1분기(1∼3월) 암호화폐를 한 번 이상 거래한 511만여 명 가운데, 46%가 20, 30대였다. 20, 30대 암호화폐 투자자 10명 중 7명은 1분기에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를 시작한 이른바 ‘코린이’(코인+어린이)였다.

이처럼 20, 30대가 빚까지 내서 암호화폐와 같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특히 기성세대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뒤늦게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어 폭락장이 왔을 때 상투를 잡을 위험성을 생각하면 지당한 우려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어떨까. 꽤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들은 부모의 삶을 통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체험한 세대다. 이들은 외환위기 때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대출받아 샀던 집을 부모가 날리는 걸 봤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탓에 집값이 오르면서 다시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이 깨지는 것도 봤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또다시 집값이 폭등하면서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내 집 갖기는 영원히 어렵게 됐다는 등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또 한 번 절감했다. 내 집은커녕 변변한 전세도 얻기 어렵게 된 사실에 절망하며 결혼도 자식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됐다.

그나마 코인 시장으로 나서는 젊은이들은 이 변화의 시기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들이다. 이들은 변화의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임을 알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개천에서조차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투기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방어적인 목적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변화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혼란의 시대다. 난세에는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몰락하지만, 그 와중에 기회를 잡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순간에 앞뒤가 바뀌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웃 회사의 누군가가 코인으로 거금을 벌어 퇴직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나도 용이 돼서 날아오르자고 생각해 봄 직하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최근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의 세 주인공이다. 괜찮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원룸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이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암호화폐 이더리움 투자에 뛰어든다. 널 뛰듯 ‘떡상(폭등)’과 ‘떡락(폭락)’을 기록하는 시세를 지켜보면서 ‘존버(꿋꿋이 버티기)’한 끝에 투자에 성공한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 모두가 ‘달까지’ 갈 수는 없다. 폭탄 돌리기 끝에 누군가는 마지막 폭탄을 떠안고 산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암호화폐 투자는 변동성이 큰 위험 투자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절망한 이들에게 코인 투자는 실낱같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투기판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위험을 경고하는 백 마디 말에 앞서 이들에게 희망을 줄 한 개의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고위험 투자자로 만든 기성세대, 특히 부동산 정책 실패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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