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절 베트남에 피랍됐던 우리 선원, 삼성이 팔걷고 구해왔다

김지훈 기자 2021. 4. 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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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잠금해제] '상사맨', 베트남 출장가서 '선원 구출'..민간외교 비사
1989년

"베트남 출장중인 삼성직원은 11월27일 삼성의 접촉선인 고위인사를 방문 우리 정부의 관심을 전달하고 관련사항 탐문 요청하였던 바 …한편 동(같은) 삼성직원은 11월29일 베트남 외무부측(영사과)도 접촉 예정이라 하며 당지(태국) 삼성지점장은 12월3일 하노이 방문 기회에 상기 고위인사와 접촉 예정이라 함."

32년 전 외교문건에서 '상사맨'들이 베트남에서 억류됐던 국민을 사실상 구출한 장면이 펼쳐진다. 태국에 주재하던 우리 대사가 1989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아군 선원 나포' 등 보고서에 등장한 '삼성직원'과 '삼성지점장'이 사실상 외교관 역할을 했다.

이 '월급쟁이 회사원'들이 정부 요청에 따라 우리 군의 파병(1964~1973년) 이후 공식 외교 관계가 두절(1975년 단교· 1992년 재수교)됐던 베트남을 찾았다. 영해 침범 혐의로 현지에서 억류됐던 선박과 선원을 구출하기 위한 대화 물꼬를 텄다. 외교부가 생산·접수된 후 30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심의를 거쳐 매년 기밀에서 해제하는 문서 가운데 올해분에서 처음 확인된 내용이다.

환경 오염 혐의로 이란에서 나포됐다 풀려난 한국케미호 사태에서 외교부 당국자들이 현지를 오가며 교섭을 벌였던 구도와 다르다. 최근 코로나19(COVID-19) 백신 수급난의 돌파구로 거론되는 '민간 외교'가 공식 외교 채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베트남엔 대사관도 없어 '발동동'…현지 사정 밝은 '상사맨'들이라면?


기밀 해제 문건들에 따르면 1989년10월4일 시에라리온 선적 어선 스탈렛호가 부산항을 출발해 중간 보급지인 싱가포르(최종 목적지 라스팔마스)를 향해 가던 중 대만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나며 10월14일 베트남 경비정에 나포됐다. 우리 주태국 대사는 태국에 주재하는 베트남측 대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베트남엔 당시 우리 대사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포된지 1개월이 넘게 조사 결과는 물론 선원 상태에 대해 답변을 듣지 못했다.

다급해진 정부가 착안한 것이 베트남 시장 개척을 추진하던 삼성물산이다. 주태국 대사는 외무부에 1989년 11월16일 "당지 삼성 지점은 베트남을 상거래차 수시 왕래 및 접촉하고 있는 바 금번 삼성지점 요원의 베트남 출장 기회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호(관련이라는 뜻) 현황 및 해결 방안 등을 파악토록 하고자 함"이라고 보고했다. 베트남측도 "삼성이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내용의 선주 위임장을 가지고 오면 협의에 들어갈 수 있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태국 대사는 본국에 삼성 지사장과 관련, "붕타우를 방문 성, 성인민위 부위원장 등 관계자를 접촉했다"며 행적을 보고했다. 지사장은 선원들이 안전하고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지만 베트남이 '영해 침범 보상금' 등 비용을 지불하란 입장이란 점을 확인했다. 또 지사장은 삼성 직원에게 '사건의 인도적 처리'라는 베트남측 입장과 영해침범 보상요구가 모순된다며 직원을 다시 인민위원회측과 접촉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지사장은 상황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태국 대사가 당초 '국내사업자'라고 본국에 보고했던 업체와 관련, 지사장은 "선원송출회사는 본건 당사자가 아닌 바, 정확한 선주를 확인해 본건 처리에 임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선원송출회사를 통한 문제 해결을 고려했던 주태국대사에게 선주가 핵심이란 의견을 '참고사항'으로 전한 것이다.
억류 해제 선원들엔 '입단속'…냉전의 흔적

결과적으로 삼성지사장의 말이 맞았다. 선주측이 라스팔마스에 거주하던 선주측이 이듬해 1월 베트남 측 관계자를 만났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해운항만청, 외교부 등이 선주의 신원 등을 근거로 베트남행에 합의했다. 3만7000달러를 지불키로 합의하면서 어선은 억류된지 3개월이 지난 2월11일 출항했다.

상사맨들의 행적이 비사로 남았던 것은 냉전 체제와 관련이 있다. 그해 3월 해운항망청은 외무부장관에게 "베트남 억류 선원이 현재 스페인 라스팔마스 항행 중에 있는 바 동 선원들은 공산권 국가에 장기간 체류함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의 방침에 의한 소정의 보안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바 필요한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해 4월 외교부장관은 주라스팔마스 대사에게 "베트남 체류기간 동안 겪은 일 및 베트남 당국이 동인들에 취한 태도등에 관한 브리핑을 받으라"며 "동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대외 보안을 유지하고 개인적 불만토론을 자제토록 요청하는 내용의 보안 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우리 정부가 체제 경쟁에 힘쓰던 모습도 드러난다. 주라스팔마스 총영사는 선원들과 관련 "개별적으로 (선원들에게) 억류 중 소감문을 받고 잘사는 국가로서 자부심을 느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더욱 노력(을) 당부(했다)며 공산체제의 허구를 설명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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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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