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美 안보 협력 얻어낸 대만, 반도체 동맹에 손놓은 한국

배성규 논설위원 2021. 4. 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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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이면 미국 정부가 한국·대만 등에 대해 본격적인 반도체 공급망 확대와 투자 압박을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의 취약점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었다. 이에 따른 조사가 6월에 끝나면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늘리고 투자를 확대하라는 강도높은 압박과 실질적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쥔 바이든, 백신 쥔 문재인/AP연합뉴스

미국은 반도체 설계·기술 분야에선 세계 최고지만 미국내 반도체 생산은 세계 전체의 12% 정도에 그치고 있다. 실제 반도체 생산 상당부분은 대만과 한국 등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중국도 국가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들어갔다. 미국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외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공장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 내 일자리를 늘리고 공급망도 갖추려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19개 글로벌 기업들을 불러 반도체 화상회의를 갖고 한국·대만·일본·유럽과 반도체 동맹을 맺으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삼성전자는 텍사스와 뉴욕, 애리조나주 등 3곳의 후보지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각 주(州)정부도 삼성에 대한 세제혜택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수십조원 이상의 개발비와 인력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내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모두를 설계·개발·생산·소비하는 독자적 능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기존 반도체 강국들과 동맹체를 만들어 중국의 추격을 막고 ‘반도체 굴기’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중국에 공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 유입과 대규모 생산 체제를 막기 위해 중국에 대한 장비 수출을 금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들의 신설 제조라인 건설이나 장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인도·호주와의 안보협의체인 ‘쿼드’를 확대해 반도체 동맹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한국 정부에도 직간접적으로 쿼드와 기술·공급 네트워크에 들어올 것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공식 요청이 없었다”며 계속 참여를 미루고 있다. 중국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글로벌 기업들을 받쳐주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공급 네트워크와 반도체 동맹까지도 기업들이 알아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미루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국내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지으면 세제혜택을 주는 반도체 특별법과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민관 합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야 말로 기본계획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선제적인 반도체 투자를 견인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검토하자는 재계와 정치권 일각의 요구에 대해서도 여권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반도체 동맹 제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우리 기업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백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 정상회담에서 이례적으로 ‘대만 해협의 평화’를 언급하며 대만의 안보 문제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이는 TSMC가 미국에 6개의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적극 협력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이 미국에 내밀 수 있는 가장 큰 협력 카드도 반도체다. 이를 활용해 ‘백신-반도체 스와핑’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에 적극 참여하면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에 밀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금은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는 애플이나 구글, 퀄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삼성의 고객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반도체 동맹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우리 기업에게 큰 기회의 장을 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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