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에 가려진 위기, 여자배구 제7구단 창단의 그림자
[스포츠경향]
한국 프로배구가 경사를 맞았다. 최근 가파른 흥행 상승곡선을 그리는 여자배구에 새 ‘막내’가 들어왔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회원사 남녀 13개 구단 단장들은 V리그 시즌 종료와 동시에 만장일치로 페퍼저축은행의 창단을 찬성했다. ‘여섯째’ IBK기업은행 이후 10년 만의 창단 소식이다. 코로나19 위기를 비교적 잘 넘는 V리그는 장밋빛 기대에 빠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여자배구는 냉정히 보면 심각한 위기다. 프로의 근간이 될 아마추어 배구는 고사 직전이다. 남자와 비교해 여자배구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일선 지도자들은 “특별한 지원이 없다면 머지않아 위기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한 목소리로 걱정했다.
현재 전국의 여자 고교배구팀의 숫자는 16개에 불과하다. 얼마 전 전국 중고대회에서는 부상 선수 1명에 출전 선수가 부족해 대회를 포기한 학교도 나왔다. 한 고교팀 감독은 “많은 (지방)팀들이 10명 안되는 숫자로 힘들게 팀을 꾸린 상황”이라고 했다. 자체 훈련도 어려운 팀 구성이다.
여자 고교선수들은 대한배구협회 등록 선수 기준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20명 정도 증가했는데, 그마저도 186명(21일 현재)밖에 안된다.
17년 역사의 V리그 선수 육성 시스템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는 한해 기껏해야 졸업생 30~40명 정도만 도전한다. 여기에서 많아야 15명 정도가 프로의 선택을 받는다. 코로나19 여파가 덮친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역대 최악의 지명률(33%·참가자 39명 중 수련선수 2명 포함 13명 지명)을 기록했다. 그 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지명자 가운데 평균적으로 10명 미만의 선수가 실업팀에서 다시 기회를 얻는다.
주말리그 등 학원 스포츠 혁신 바람 속에서 배구 뿐 아니라 다른 종목 고교선수 레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좋은 선수들이 수도권 명문고로 몰리면서 지역 불균형도 심하다. 배구는 지원 선수도 매년 줄어들어 선수난까지 심각하다.
실업팀 상황도 나을게 없다. 여자는 8개팀이 있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팀은 절반 정도다. 예산 여력에 따라 팀 운영이 일시적으로 중단될 정도로 지자체의 지원이 열악할 뿐 아니라, 전국체전을 목표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팀도 있다. 아마추어 배구가 마주한 상황은 ‘위험’ 수준이다.
당장 제7구단 확대로 고교 선수들의 프로 지명이 늘어난 점에서는 아마추어 배구계도 환영한다. 연맹은 신생팀에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6명을 우선 지명할 권리를 줬다. 2022년에는 선수 1명 우선 지명권과 시즌 최하위팀과 동일한 확률로 1라운드 추가 선발권을 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패스’가 속출하는 신인 드래프트 현장을 보면, 그리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실업팀은 오히려 긴장한다. 한 실업팀 감독은 “신생팀의 부족한 선수 자원을 실업팀에서 채우게 될텐데, 선수층이 약한 실업팀 입장에서는 경기력 하락 뿐 아니라 (선수 부족으로)팀 존폐가 좌우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자배구는 높아진 인기 속에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 몸값이 7억원(옵션 포함)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래’는 안보인다. 저비용으로 운영하는 구단들 대부분은 2부팀 운영에 대해 난색을 표한다. 대신 적은 돈으로 실업팀을 지원하자는 목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베스트 라인업 의존도가 높은 배구 종목 특성상 V리그에서 점점 새싹이 커갈 자리가 없다. 그 사이 아마추어 저변은 말라간다.
당장 리그 확대로 인한 경기력 저하도 불보듯 뻔하다. 제7구단 창단 과정에서 연맹은 빨리 리그를 확대하려는 데만 시선을 뒀을 뿐, 정작 리그 밸런스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뒷전으로 미뤄둔 모양새다. 단순히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앞서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먼저 걸어가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했던 부분이다. 한 아마추어 배구 지도자는 “7구단 창단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머리만 커지고 몸통은 더 허약해지고 있어 문제”라며 아마추어를 위한 강력한 투자·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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