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까지 보장된다는 '태아보험', 꼭 가입해야 하는 걸까?

칼럼니스트 여상미 2021. 4. 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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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보험 #보험상품 #태아보험 #어린이보험 #자녀보험 #보험경쟁 #보험마케팅

나는 임신 3개월에 급성 충수염으로 복강경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수술을 했느냐고 다들 놀라지만 당시로서는 아이를 위해서도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제날짜에 맞춰 무사히 태어났고, 크면서 작은 병치레 정도는 있었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당시 임산부의 몸으로 병원 신세를 지느라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태아 보험과 관련한 일이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려 보면 마음에 상처로 남은 순간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내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임산부들 사이에서는 마치 족보처럼 전해지는 출산용품 리스트 같은 것이 돌았다. 심지어 조리원에 준비해 가야 할 물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한 수많은 육아 용품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이 '태아 보험'이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왜들 그리 당연한 듯이 태아보험에 가입하는지, 넋 놓고 있던 나도 갑자기 조바심이 났었다. 결국 임신 중기로 접어들 무렵 주변의 많은 산모들이 가입한다는 보험사에 연락을 했고 거기서 나는 가입 조건이 되지 않아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임신 중 수술 병력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보험사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3~4개의 보험 업체에 문의를 했지만 모두 가입을 거절당했다.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도 산모도 모두 문제없다는 소견서를 작성해 주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태아보험 업체들은 더욱 늘어나던 상황이었고, 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방법의 마케팅, 행사 등이 동원됐다. 보험사에서 주최한 산모 교실에 가면 대부분 마지막에 보험 신청서를 나눠주고 가입 동의를 유도했다. 그렇게 태아보험 유치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입 자격이 되지 않는다니, 아이를 품은 채 수술을 하던 날보다 훨씬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왠지 더 악착같이 태아보험에 가입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모두가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조금 떨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해외 법인의 보험사 한 군데에서 승인을 해주었고 마침내 우리 아이도 태아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태아보험일 뿐, 이후 갱신과 함께 어린이보험으로 연결되고 상품에 따라 성인까지 연장할 수도 있어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계약은 아니었다. 설상가상 약관 내용에는 이름도 낯선, 무서운 병명들이 수도 없이 적혀 있어서 아마 그것들을 모두 걱정했다가는 아이의 평생을 태아보험에 맡겼을 지도 모른다.

​태아보험이 100세까지? 어린이 보험, 자녀 보험... 결국 다 같은 말 아닌가요?​ ⓒ여상미

물론 모든 것은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요즘같이 각종 질병과 유해 환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특히 보험은 더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아와 어린이들,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대상으로 한 보험 상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부모들이 이에 대해 필요한 부분과 경제력을 고려해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잣대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기존 보험과 다를 게 없는 약관, 태아보험에서 시작해 100세까지 이어지는 연장 시스템 등은 유아를 대상으로 한 보험 시장의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된 단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실생활에 얼마나 유용하게 적용되는 지도 의문이 든다. 이제 너도 나도 보험 하나 들지 않은 사람은 없는 시대! 우리 아이의 보험도 꼼꼼하게 따지고 선택하기 위해 더 명확한 제도와 기준들이 정리됐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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