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96만 원 세트와 김학의 사건 - '내로남불'을 넘기 위해 필요한 것
얼마 전 MBC와 한겨레가 눈에 띄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단독] '술 접대' 검사 2명만 면직 결론…1명은 빠졌다" (MBC 뉴스데스크, 2021년 4월 19일)와 "법무부, '96만원 세트' 검사 3명 중 2명 징계 요청키로" (한겨레, 2021년 4월 21일)라는 기사였습니다. 두 기사의 핵심 내용은 비슷합니다. 라임 사태 핵심 관련자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검사 3명에 대해 감찰한 법무부 감찰관실이 3명 중 2명에 대해 징계를 요청할 방침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감찰 결과는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검이 접대를 받은 검사를 3명으로 계산해 1인당 접대 액수가 96만 2천 원이라고 계산한 것과 배치된다는 점도 두 매체가 공통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검찰은 1인당 접대 액수가 '김영란법'의 형사처벌 기준인 '향응액 100만 원'에 못 미치기 때문에 검사 3명 중 2명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는데. 법무부 감찰 결과대로라면 검찰의 계산법이 잘못된 셈이라는 것입니다.
박범계 장관, 또 '내로남불'?
이전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자면 박범계 장관은 MBC와 한겨레 보도에 대해서도 피의사실 또는 감찰사실 공표가 있었는지 진상조사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법무부 감찰관실은 박범계 장관이 직접 관장하는 조직이니 더욱 엄격한 조사가 실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MBC나 한겨레가 법무부 관계자가 아닌 다른 취재원을 통해서 관련 사실을 취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박 장관이 문제 삼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던 김학의 전 차관 관련 사건에 대한 보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4월 22일 밤까지도 박 장관은 보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박범계의 내로남불'이란 말이 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술 접대 의혹 검사 중 일부를 불기소할 때 서울남부지검장이었지만, 지금은 박범계 장관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의 책임론도 불거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내로남불'을 넘어서…피의사실 보도는 공익성이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두 기사 모두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을 위해 기여하는 바도 있는 기사라고 평가합니다. '96만 2천 원 룸살롱 세트는 무죄'라는 검찰의 계산법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법무부 감찰관실이라는 공식적인 기구에서 검찰의 결론과 상반되는 결과를 내놨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보도한 것은 정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인사권자(대통령)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법무부와 검찰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들로서는 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 보도 등에 대해서는 '받아쓰기'라며 폄하하던 매체가 박범계 장관의 법무부가 진행하고 있는 감찰에 대해서 '받아쓰기'하는 것을 두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이중 기준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보도 가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법무부 감찰관실과 서울남부지검의 기준 가운데 어느 쪽이 더욱 적절했는지 평가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입니다.)
정파성이 문제의 핵심…일관되고 객관적인 기준의 중요성
언론사가 정파성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에 가까운 정치적·정책적 쟁점과 관련해 기사를 쓰는 것과 당사자가 누구든 객관적 기준에 따라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어야 하는 형사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형사사건에 대한 기사를 객관적·공익적 기준이 아니라 정파적 기준에 입각해 보도하면 '우리 편은 좋은 사람, 상대 편은 나쁜 사람'이라는 구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에는 평소 지지하던 사람의 범죄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현실을 부정하는 수준으로 왜곡하고, 평소 비판해왔던 사람의 혐의에 대해서는 음모론 수준으로 부풀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심지어 이런 기사들이 수익의 관점에서는 더욱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정치화하고, 심지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콜로세움형 수사'로까지 변질시키는 것도 정파화된 피의사실 보도의 폐단입니다. (정파적 보도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대중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규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무분별하게 피의사실을 보도하는 경향 역시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객관적·공익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피의사실 보도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객관적·공익적 기준이 없는 피의사실 보도, 이에 따라 정파적으로 변질된 피의사실 보도가 문제입니다. 수사의 주체인 경찰이나 검찰에 대한 감시를 포함한 권력 감시를 지향하는 피의사실 보도, 국민이 알 권리가 있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기준에 입각한 피의사실 보도, 우리 편이든 상대 편이든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에 따라 보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는 기사가 이어진다면, 피의사실 보도와 관련된 많은 오해와 혼란이 없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은 왼쪽에서 비난을 받고, 다음 번에는 오른쪽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피의사실 보도를 꾸준히 관철하는 기자와 언론사만이 피의사실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무한반복을 넘어 국민의 알 권리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피의사실 보도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특정 정파나 조직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보도를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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