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국민연금은 증시 흑기사가 아니다

정해용 기자 2021. 4.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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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내 주식에 대한 전략적자산배분(SAA)의 이탈 허용 한도를 기존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1%포인트(P) 늘리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투자자산에 대해 자산별 투자 목표 비중을 설정하고, 기금운용본부 운용역(펀드매니저)들이 이 비중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자금을 운용한다. 이탈 허용 한도도 자산별로 정해뒀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 중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이 16.8%가 되도록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이 비중보다 2%P가 높은 18.8%를 넘으면 국내 주식을 매도해서 비중을 낮춰야 했다. 이탈 허용 한도를 3%로 높인 것은 국민연금이 기금의 19.8%까지는 국내 주식을 보유해도 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기금의 총 규모(855조원)를 고려하면 국내주식을 7조원가량 더 보유해도 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부터 국내 주식 주가가 급등하면서 전체 국민연금기금의 자산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탈 한도 최대 허용치인 18.8%를 넘었고,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이 비중을 낮추기 위해 국내 주식을 매도했다. 이런 매도세를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규탄하며 정부에 불만을 제기했다. 9일 이탈 허용 한도 확대는 이런 개인투자자들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셈법으로 국민연금에 강제로 국내 주식을 보유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너무 근시안적 정책이다. 국민연금이 8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기금으로 운용하는 이유는 국민이 은퇴 이후에 더욱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위해서지 코스피지수나 특정 주식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1년에 적자가 발생하고, 2056년에 고갈될 전망이다. 적자와 고갈 시점이 더 빨리 올 것으로 예상하는 기관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을 2040년, 고갈 시점을 2054년으로 본다.

한국인 평균수명(88.3세)을 적용하면 현재 50세 이하 가입자는 연금 일부만, 32세 이하 가입자는 전혀 받을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고령화로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저출산으로 연금보험료를 내야 할 가입자는 줄고 있어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기금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평균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2.26%, 최근 5년 수익률은 2.22%에 그쳤다.

다시 말해 현 상황은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인위적으로 높여 주식을 팔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주식이면 국내 주식이든 해외 주식이든 투자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과 같이 국내 주식을 팔지 말라고 하는 여론 눈치를 보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최근 국민연금의 투자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테슬라 주식 투자였다. 국민연금은 2014년 3분기 기준으로 테슬라 주식을 792만달러(약 88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했다. 2014년 3분기 말 테슬라 주가는 48.54달러(수정주가 기준)였다. 현재는 718달러가 넘는다. 만약 국민연금이 현재까지 테슬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1500%가 넘는 평가이익을 얻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옛날 사람들은 인재를 뽑을 때 ‘밖으로는 원한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인척을 꺼리지 않는다(外擧不避仇 內擧不避親)’고 했다. 원수든 친척이든 친소관계를 따지지 않고 실력을 갖춘 사람을 천거하는 실용을 강조한 정신이다.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필요하다. 국내 주식, 해외 주식으로 내 편 네 편을 가르기보다 테슬라든 삼성전자든 미래 기업가치가 있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일부 주식투자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개인적으로 노후 자금은 제때, 제대로 받고 싶다. 국민연금이 수익률만 보고 투자할 수 있도록 그만 좀 놔두자.

[정해용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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