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뒤렌마트의 동시대성을 탐구하는 메타연극

김보영 2021. 4.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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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우리 연극계가 가장 사랑했던 독일 극작가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였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그로테스크, 아이러니, 유머, 패러독스 등의 기법을 통해 통렬하게 풍자한 그의 작품들은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현실인식을 촉구한다.

이런 뒤렌마트를 애정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 '가면을 벗다 : 뒤렌마트 오디션'(은세계 씨어터컴퍼니/ 이재진 작/ 이동준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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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리뷰
은세계씨어터컴퍼니 '가면을 벗다 : 뒤렌마트 오디션'
(사진=스튜디오 쉼표)
[이은경 연극평론가] 20세기 우리 연극계가 가장 사랑했던 독일 극작가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였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그로테스크, 아이러니, 유머, 패러독스 등의 기법을 통해 통렬하게 풍자한 그의 작품들은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현실인식을 촉구한다. 이런 뒤렌마트를 애정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 ‘가면을 벗다 : 뒤렌마트 오디션’(은세계 씨어터컴퍼니/ 이재진 작/ 이동준 연출)이다. 제목에서도 예상되듯 오디션 형식을 빌어 뒤렌마트의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뒤렌마트에 관한 메타연극이다.

냉전체제의 모순과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한 과학기술의 폐해를 비판한 ‘물리학자’,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의식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물루스 대제’, 자본주의의 폐해와 이기적 공동체의 광기를 폭로한 ‘노부인의 방문’, 종교적 정의와 계급적 정의에 대한 성찰을 담은 ‘미시시피 씨의 결혼’, 권력·자본·종교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천사, 바빌론에 오다’, 죽음을 소재로 삶의 무상함을 그린 ‘유성’, 타락한 예술과 자본의 부조리를 풍자한 ‘황혼녘에 생긴 일’ 등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에필로그에서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벗는 퍼포먼스는 ‘인간이 연극에 의해 교화될 수 있는가’를 고민했던 뒤렌마트에게 바치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시다”라는 헌사이자 거짓과 왜곡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다시 진실을 탐색하자는 예술적 다짐이 담겨있다. 뒤렌마트에 관심있는 관객이라면 작품 속에 내재된 동시대성을 깨닫고, 그의 작품이 특정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극적 성격을 갖는다는 기존 평가를 재확인하게 된다. 뒤렌마트를 모르는 관객이라도 배우들의 역할놀이를 즐기는 사이 정의에 대한 담론을 따라갈 수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대 전체를 감싸듯이 존재하는 커다란 패널과 이를 지탱하는 기둥들로 이루어진 반구형의 무대는 단순하지만 상징적이다. 극적 공간, 상징적 이미지, 실제 사건장면 등이 영상으로 삽입돼 사실성을 높이고, 가면을 적극 활용한 코러스의 움직임은 고전극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화효과를 의도한 서사적 연출은 ‘정의’에 대해 관객들도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원로 배우들의 열연은 반가웠고, 젊은 배우들과의 앙상블은 인상적이다. 지적인 상상력을 자극해 뒤렌마트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공연이다.

하지만 다중시점이 매력적인 작품인데 중첩된 공간과 관점이 잘 구분되지 않은 점, 일상적이지 않은 대사와 1인 다역의 연기로 인해 원로 배우들의 실수가 적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오만한 인간의 몰락을 상징하는 바벨탑의 붕괴와 종교 갈등에 의한 폭력적 비극인 뉴욕 쌍둥이빌딩의 붕괴를 동일시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현실 사건을 차용한 것 역시 전체 맥락에서 도드라져 어색했다. ‘유성’의 한 장면에서 여배우가 수염을 달고 슈비터를 연기하는데, 수염 없이 전복된 성(性)을 드러내는 것이 뒤렌마트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스튜디오 쉼표)
(사진=스튜디오 쉼표)
(사진=스튜디오 쉼표)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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