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오징어 그 후]①[르포]오징어 돌아오면 사람도 돌아올까
새벽 고생 무색하게 적자감수..어획량 줄자 주민 떠나
올해부터 혼획 새끼 오징어도 일절 판매않기로 인식변화
거센 소비자 요구.."총알오징어 유통 돈버는 시대 지나"
어민끼리 다툼 늘었다지만 "항구 불 꺼지는 것보다야.."
[경북 영덕, 포항=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여명과 어둠이 씨름하던 지난 9일 새벽 4시반께 경북 영덕군 축산항. 환한 등을 밝힌 광명호가 밤샘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접안하면서 어둠을 밀어냈다. 그럴수록 선장 얼굴에 내린 어둠은 짙어져 갔다. 어창이 가벼웠나 싶었는데 역시였다. 경매를 마친 광명호 선주 정희태(59)씨는 “오늘도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하루에 최소 100만원치는 잡아야 남는데 오늘처럼 30만원에 그치기가 예사”라고 했다.
뱃일이 32년 됐다는 선주 A씨는 “경매에 잡은 오징어를 내려고 배들이 새벽항에 줄을 서는 광경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크는 속도보다 잡는 속도가 빨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마을은 자취를 감추는 오징어를 붙들고자 안간힘이다. 축산항 위판을 도맡는 영덕 북부수협은 올해부터 새끼 오징어는 일절 위탁판매(위판)하지 않기로 했다. 전에는 현행법상 허용한, 혼획 새끼 오징어(어획량의 20%)는 위판을 맡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출신과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잘은 오징어는 일절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덕 북부 수협 경매사(23년 경력) 임학송 과장은 “이제는 20% 미만 혼획물도 취급 안 한다”며 “어떻게 잡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속이 바다 곳곳까지 미치지 못하는 실정을 반영한 조처다. 어민의 선의에 기대기보다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는 편이 마을을 살리는 길이다. 사실 수협은 어민들이 모인 조직이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것`이었다. 그런 수협이 합법적인 수준인 20% 혼획물까지 배격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는 단속반을 헛걸음으로 돌려세웠다. 이날까지 사흘 일정으로 단속을 나온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김황년 어업지도과 계장은 “산 오징어는 한 마리도 못 봤다”며 “한치 서너 마리를 본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비단 축산항 얘기만은 아니다. 전날 만난 포항 대승해물마트 최한두 대표는 “아무리 금어기라도 뒷방(불법)으로 생물 오징어가 유통되기 마련인데 올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해안 전역에서 나는 오징어를 받아서 16년째 도매하고 있다.
이런 신고가 늘어나는 것은 반길 일이다. 일선에서 이뤄지는 신고라서 구체적이고 정확해 단속에 도움이 된다. 신고 의식이 퍼지면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사실 단속이 모든 어민과 상인을 아우를 수는 없다. 그래서 적발보다 중요한 게 인식 전환이다. 혹자는 “오징어 때문에 동네 사람끼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법이 서로를 이간질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새벽 항에 불이 꺼지는 것보다야 나을 테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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