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79] 심야식당의 치킨 와플

박진배 교수 2021. 4. 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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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와플/박진배 교수

일본 만화 ‘심야식당’은 대도시 서민들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인기를 끌었다. 독특한 시간대와 작은 규모의 공간 설정 또한 스토리 전개를 극대화했다. 각종 직업을 가진 손님들이 찾는 심야의 식당은 뉴욕에도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택시 영업을 많이 하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찾는 식당이 있다. 24시간 영업이 많은 한국 식당들도 주말에 클럽에서 나온 젊은이나 새벽일을 나가기 전에 들르는 손님들의 장소다. 소호 지역의 ‘블루리본’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보다 한밤중에 예약이 더 어려운 유일한 식당이다. 자기 레스토랑에서 일을 마친 셰프들이 새벽에 주로 모이는 아지트여서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치킨 와플’ 메뉴도 한 심야 식당에서 탄생했다.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주로 먹던 ‘솔 푸드(Soul Food)’다. 와플은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서 19세기경 미국에 도입돼, 흔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서민들에게 인기 있던 이 두 음식이 결합한 스토리가 있다. 할렘 르네상스의 절정기였던 1930년대 뉴욕에 ‘웰스(Wells Supper Club)’ 식당이 있었다. 냇 킹 콜(Nat King Cole) 등의 재즈 공연자들이 주 단골이었는데, 이들이 공연을 마치는 시간은 보통 새벽이었다. 긴 연주로 지친 이들은 허기를 때우기 위해서 식당을 찾았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에는 남은 음식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주인은 공연자들을 위해서 남아있던 치킨을 튀기던 중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보고 아침 식사까지 먹고 가라고 와플도 만들어 주었다. 저녁과 아침이 한 접시에 담긴 이 메뉴는 이후 새벽에 식사하는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새벽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을씨년스럽다. 이럴 때 달콤한 시럽이 뿌려진 폭신한 와플과 바삭한 치킨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사진>. 이 음식은 이제 많은 레스토랑의 단골 브런치 메뉴가 되었다. 프라이드치킨의 대명사인 KFC에서도 몇 해 전 메뉴로 출시했을 정도다. 밤새워 공연을 마친 연주가들이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새벽에 치킨 와플을 찾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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