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통합교육과정, 어디까지 왔나
[경향신문]
다음과 같은 가정들을 믿고 있었다. 인류 문명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과학기술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인류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발전의 시계는 멈추었고 삶의 질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숨쉬기 곤란할 만큼 심각한 황사와 미세먼지, 기후위기와 플라스틱의 공포는 점점 목을 죄어 오는 것 같다.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의 위험은 또 어떠한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편리함과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인류는 이로 인해 유례없는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 마주 서게 된 데에는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전문성을 금과옥조처럼 받들며 과학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지 못하고 맹신하는 우리들 마음의 습관에 원인이 있다.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모든 것을 진리라 믿으며 전문가에게 문제를 일임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종이봉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산림의 훼손을 막기 위해 개발한 비닐봉지가 오늘날 지구와 인류에 끼치고 있는 악영향을 내다볼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 기술을 바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에서도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가정 아래 공부가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으며 가르치고 배웠지만 이제는 현실에 관심을 갖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 지식들이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분야를 세분화시키며 전문성을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연결 짓고 통합하고 함께 협력하여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동안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점증하는 위험 요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방향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아직 교과 간 장벽이 높다. 올 초 학교에서 학년중심 통합교육과정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다른 교과의 구성 체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주제가 여러 교과에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사들이 소통하여 조정하거나 통합 프로젝트로 과목의 특성을 살려 더 깊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학년중심 통합교육과정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몇몇 교과만 참여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교과가 참여해 배움과 삶을 연결하는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 표현 활동까지 연결하며 통합교육과정에 조금씩 부합해가는 것 같다.
올해 수능부터 문이과 통합수능을 실시하게 된다. 또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어 학교 간 장벽이 옅어지게 될 것이다. 평가에서도 단편적 지식을 측정하는 선다형 문제를 줄이고 서술형 평가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 정책의 방향은 부분보다 전체를, 단편적 지식보다 지혜를 키우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변화가 내적 요인이 아니라 외적으로 요구될 때 불편함과 저항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롭게 시도되는 것들이 낯설고 변화에 적응하려면 힘들겠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눈다면 평소 교사들이 추구하던 교육의 방향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손연일 광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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